[20대 여자 현상] "성범죄 피해가 두렵다" "성범죄 무고가 두렵다"

김다은 기자 2021. 9. 7.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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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N번방 등 일련의 사건은 남녀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서도 남녀가 크게 갈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대의 격차가 가장 컸다.
2018년 7월,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3차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 ⓒ시사IN 신선영

전체 세대의 남녀에게 어떤 상황에서 성범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지 물어봤다.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함께 실시한 웹조사에 따르면 전체 성별·세대별 집단 가운데 20대 여성들이 가장 심각한 불안감을 느꼈다. 20대 여성 대다수가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불안하다(81.5%)’ ‘불법 촬영물에 의한 피해자가 될까 봐 불안하다(81.2%)’라고 답변했다(〈그림 1〉 참조). 20대 남성 가운데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와 자신이 ‘불법 촬영물에 의해 피해자가 될까 봐’ 불안감을 느끼는 비율은 각각 20.2%와 24.8%였다.

그뿐 아니라 상당수 여성은 ‘길거리의 모르는 사람(67.8%)’이나 ‘온라인 공간(56.1%)’ 등 상대적으로 낯선 대상은 물론이고 ‘가정·학교·직장에서 아는 사람(52.0%)’으로부터도 성범죄에 노출될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더욱이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경우’, 이에 따른 ‘2차 피해’에도 큰 불안감을 느꼈다(76.6%). 같은 질문들에 동일한 답변을 한 20대 남성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에 머물렀다.

‘한국 여성들이 느끼는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도 남녀 각자에게 질문했다. 여성에겐 ‘자신(여성)이 느끼는 성범죄 두려움’, 남성에겐 ‘여성이 느끼는 성범죄 두려움에 대한 자신(남성)의 생각’을 물어본 셈이다. 한국 여성 10명 중 8명 이상(84.8%)이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전 세대 여성 모두 별 차이가 없다. 최소 79.8%(60대 이상 여성)에서 최대 87.6%(20대 여성)이다. 이 질문에 대해 20대 남성은 50.0%가 ‘크다’, 32.1%는 ‘크지 않다’고 답변했다(〈그림 2〉 참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7년 본격 시작된 미투 운동, 2018년 혜화역 시위, 2019년 N번방 등 계속되는 사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녀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번 〈시사IN〉의 조사에서 드러난 점은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서도 남녀가 크게 갈린다는 것이다. 그 격차가 가장 큰 세대는 20대였다.

〈그림 1〉에 등장하는 ‘공중화장실’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진 공간이다. 불법 촬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2016년 서울시는 여자 화장실 몰래카메라 범죄 방지를 위해 ‘여성 안심 보안관 사업’을 시행했다. 자치구별로 여성 안심 보안관 2~4명을 배치해 공공·민간 화장실에 설치된 ‘고정식 카메라’를 단속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2018년 9월, 공중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 찾는 법을 설명하는 SBS <생활의 달인> 출연자. ⓒSBS <생활의 달인> 갈무리

‘몰카 탐지 카드’ 펀딩 성공의 의미

2018년엔 SBS 〈생활의 달인〉에 ‘몰카(불법 촬영 카메라) 찾기 달인’이 나와 공중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찾는 방법을 전수한 바 있다. 와이파이를 검색했을 때 길고 이상한 조합의 이름이 나오는지 확인하라는 팁이었다. 2020년 같은 방송에서 또 다른 달인이 나왔다. 이번에는 빨간색 셀로판지를 휴대전화 카메라에 대고 사방을 비춰보며 몰래카메라를 찾는 방법을 알려줬다. 두 방송 모두 큰 관심을 모았다. 한 시민은 방송을 본 후 빨간 셀로판지로 카메라를 찾는 원리를 이용해 ‘몰카 탐지 카드’를 만들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올렸다. 이 제품은 1차 펀딩에서 5000%가 넘는 성공률을 달성했다. 20대 여성 10명 중 8명이 공중화장실 이용과 불법 촬영 카메라를 불안해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불법 촬영물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은 2018년 버닝썬 게이트와 2019년 N번방 사건 등을 떠올리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은 남성들 간 메신저로 공유되거나 음란 사이트, 디스코드, 텔레그램 등을 통해 유통되며 무제한 복제돼 걷잡을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진다.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은 온라인 성폭력을 당한 전국 여성(15~4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이 유포된 피해자 45.6%가 자살을 생각했고 이 중 19.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지난 3월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접수한 피해 사례와 삭제 지원 현황 등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0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범죄 피해자는 총 4973명으로 전년(2087명) 대비 2.4배로 증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4047명(81.4%)으로 피해자의 대부분이었다.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접수된 피해 6983건 중 불법 촬영이 2239건(32.1%)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6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발표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849명 중 1356명(73.3%)이 1심에서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다크웹에서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배포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씨는 징역 1년6개월을 살고 지난해 7월 석방됐다.

디지털 성범죄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통계는 또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계를 보면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신고는 2015년(3768건)부터 2020년(3만5603건)까지, 5년 새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와 관련해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새롭게 확정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상습적인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에 대한 법원의 권고 형량이 최대 29년3개월로 높아졌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적 제재가 그 심각성을 따라잡지 못할뿐더러 예방할 수 있는 실효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범죄에 대한 법률 규정들(예컨대 ‘무엇이 성범죄이고 어떤 경우에 성립되는가?’)을 확실하게 재규정하고 적절한 양형 기준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시사IN〉 조사에서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가운데 52.4%는 ‘한국 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할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인식했다(여성 17.7%). 인식의 격차는 20대에서 가장 컸다. 20대 여성은 7.9%만이 ‘여성들이 성범죄 위험을 실제보다 과장한다’고 답했으나 이 인식이 20대 남성에서는 61.1%에 달했다(〈그림 3〉 참조). 전체 남성 평균(52.4%)보다도 높다.

그렇다면 성범죄 인식 항목 중 20대 남성이 가장 높게 ‘불안하다’고 답한 항목은 무엇일까? 20대 남성들은 ‘무고(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에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림 1〉의 성범죄 관련 인식에 따르면, 20대 남성 절반 이상이 ‘나는 의도와 상관없이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될까 봐 불안하다(54.8%)’에 동의했다. ‘한국에서 남성은 부당하게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몰리고 있다’라는 항목에도 20대 남성 73.6%가 그렇다고 답했다(〈그림 4〉 참조). 20대 여성은 22.7%가 이에 동의했다.

‘성범죄 무고’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법부는 성범죄 판결을 할 때 실수를 할 수 있다. 두 사례 중 무엇이 더 큰 실수라고 생각하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1)실제 성범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 (2)성범죄 가해 사실이 없는 사람이 처벌받는 경우 (3)두 경우 모두 동등하게 문제다 (4)잘 모르겠다’ 네 가지를 제시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과 국화꽃. ⓒ시사IN 신선영

무고 혐의 중 실제 유죄 비율은?

이 문제에서도 성별 간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범죄자가 처벌당하지 않거나 무고한 사람이 법적 처벌을 받는 (1)과 (2)에 대해 ‘두 경우 모두 문제’라는 답변의 응답률은 20대 남녀 모두에서 두 번째(20대 남자 29.4%, 20대 여자 35.9%)에 머물렀다. 20대 여성 50.9%가 ‘(1)이 더 큰 실수’라고 답변한 반면 20대 남성은 22.0%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20대 남성은 40.1%가 ‘(2)가 더 큰 실수’라고 답변했으나 이에 동의하는 동년배 여성은 10.9%에 불과했다(〈그림 5〉 참조).

실제 한국 사회에서 어떤 경우가 더 흔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질문했다. 성별과 세대별을 따지지 않은 모든 응답자 기준(전체 평균) 답변을 보면, ‘(1)이 더 흔하다’가 52.8%, ‘(2)가 더 흔하다’가 17.4%, ‘두 경우가 비슷하다’가 23.7%, ‘잘 모르겠다’가 6.1%다.

그런데 20대에서는 남녀 모두 ‘튀는 답변’을 내놓았다. 20대 남성 가운데서는 34.9%가 ‘(2)가 더 흔하다’라고 답변했는데, 이는 평균(17.4%)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20대 여성은 70.7%(전체 평균 52.8%)가 ‘(1)이 더 흔하다’라고 응답했다(〈그림 6〉 참조).

실제 통계를 보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발행한 연구보고서 ‘여성폭력 검찰통계 분석(Ⅱ):디지털 성폭력 범죄, 성폭력 무고죄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2017~2018년 성폭력 사건 가해자로 검경의 수사를 받은 사람(피의자)은 8만명이다. 이 중 3만명가량이 불기소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검찰이 성폭력 무고 혐의로 수사한 피의자는 모두 1190명이었다. 그중 60.3%(717명)는 기소되지 않았다. 검경이 재판에 넘겨 무고 혐의의 유죄가 인정된 사람은 전체의 28.7%(341명)였다.

남녀 모두 동의한 부분도 있었다. ‘성범죄 처벌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대 남성은 80.8%, 여성은 93.8%가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 중 남성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남성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신고자는 2020년 현재 926명으로 전년도(2019년, 255명)의 3.6배에 달했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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