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20년간 일군 아프간 과학 산산조각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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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이 힘들게 이룬 과학을 모두 무너뜨릴 겁니다. 제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네이처, 사이언스 등 국제 학술지들은 그동안 힘들게 구축한 과학 연구 기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이공계 대학 박사과정에 유학 중인 30대 아프간 연구자 야쿱(가명)씨는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외국과 협력한 연구자, 공무원의 명단을 만들어 수색하고 있다”며 “나도 정부에서 일한 과학자로 이미 수배 명단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에 있는 가족도 은신한 상태지만 탈레반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인터뷰할 용기를 냈다고 했다.
한국에는 40여 명의 아프간 유학생이 있다. 그 중 야쿱은 ‘코리안 드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그는 지난 2001년 한국 정부 지원으로 국내 대학에 유학해 석사까지 마쳤다. 아프간으로 돌아가서는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교통부에서 디지털 정책 자문 연구자로 일했다. 한국 엔지니어들과 같이 일한 인연으로 2019년부터 다시 한국에서 교통의 디지털화를 연구하고 있다. 야쿱은 “나중에 교통부 장관이 돼 한국의 버스, 지하철, KTX 시스템을 아프간에 도입하는 게 꿈이었다”며 “탈레반은 이 모든 꿈을 산산조각 냈다”고 말했다.
야쿱은 2001년 탈레반이 물러난 후 아프간 과학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는 여성 교육이 정상화되고 수십 개의 공립·사립 대학이 세워졌다. 공립대학의 학생 수는 2001년 8000명에서 2018년 17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 중 4분의 1은 여학생이 차지했다. 아프간에서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도 2011년 71편에서 2019년 285편으로 늘었다.
야쿱은 “이제 아프간에 더 이상 과학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과학은 뛰어난 연구자와 학계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데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모두 나라를 떠나거나 보복을 피해 숨어버려 과학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탈레반이 권력을 잡은 후 수십억 달러의 해외 아프간 자산이 동결되면서 대학과 연구에 대한 지원이 끊겼다고 전했다. 과학자들의 신변도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아메리칸대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교수와 학생 13명이 희생됐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위험에 빠진 학자를 위한 인도주의 기구(SAR)’는 아프간 연구자들의 해외 정착을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달에만 500여 명이 지원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탈레반이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야쿱은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금지한다”며 “어떻게 그들이 관찰과 데이터에 기반한 자유롭고 비종교적인 과학 연구를 허용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여성 고등 교육을 허용한다 했지만 여교수에게만 배우라고 했다”며 “여교수 수를 생각하면 사실상 금지한 것”이라고 했다.
야쿱은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연구자 생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이룬 아프간 과학의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논문에 조국의 이름을 계속 넣고 싶다”며 “탈레반이 인권과 여성 교육과 같은 국제 기준을 받아들이도록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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