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서 아내와 바람피운 불륜남, 주거침입죄 처벌 못한다"

박현주 입력 2021. 9. 9. 17:55 수정 2021. 9. 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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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37년만 유죄→무죄 판례 바꿔

공동주거자인 아내의 허락을 받고 성관계를 목적으로 내 집을 드나든 불륜남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간통죄 폐지로 불륜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닌 만큼 내연 관계인 아내의 허락을 받고 통상적 출입 방법에 따라 주택에 들어갔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주거침입죄 사건에 관한 공개변론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공동거주자 승낙, 침입 아니다” 37년만 판례 변경…2명은 반대


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내연 관계인 유부녀의 허락을 받고 불륜 목적으로 주거에 침입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거주자의 승낙을 받고 집에 들어갔어도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한 1984년 대법원 판례가 37년 만에 바뀌게 됐다.

이 사건 피고인인 A씨는 남편 B씨가 집을 비운 사이 내연관계인 B씨 아내의 동의를 받고 집에 세 차례 드나들었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의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봤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공동거주자인 B씨 아내의 허락을 받았다면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인 ‘주거의 평온’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미지. 연합뉴스


대법원도 원심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검찰 측 상고를 기각했다. 다수의견을 제시한 대법관 9명은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침입이란 거주자가 누리는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며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거주자 의사에 반한다는 주관적 사정만으로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은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외부인이 다른 거주자 승낙을 받아 주거에 들어갔더라도 부재중인 거주자가 출입을 거부했을 것이 명백하다면 부재중인 거주자의 주거에 대한 사실상 평온이 침해된 것”이라면서다.


별거 중 문 따고 들어온 남편도…“주거침입 아니다”


이날 대법원은 같은 취지로 별거 중인 아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강제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간 C씨에 대해서도 공동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앞서 C씨는 부부싸움 후 한 달 만에 집을 찾았지만 처제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부모와 함께 현관문 걸쇠를 부수고 집에 들어간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공동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부부관계를 청산한다는 ‘명시적 합의’가 없었던 만큼 C씨는 공동거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과 같이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이 출입을 정당한 이유 없이 금지한 다른 공동거주자의 사실상 평온을 해치면서 공동주거지에 들어가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남편 C씨가 물리력을 행사해 집 문을 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동생활 장소를 이용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도 봤다.

함께 집을 찾아간 C씨 부모 2명에 대해선 공동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의 승낙을 받은 외부인의 장소 출입이 공동거주자의 통상적인 공동생활 장소를 이용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 경우, 다른 공동거주자의 사실상 평온을 해치면서 공동주거에 들어가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C씨 부모 2명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동부지법에 돌려보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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