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고발사주' 의혹 뭐길래..김대업 병풍, 김경준 BBK 전철 밟나 [뉴스원샷]

정효식 2021. 9.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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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어김없이 야당 대선주자에 대한 수사가 대선을 삼킬 기세입니다. 2022년 3월 9일 치러질 20대 대통령선거를 180일 앞두고 대선 수사가 본격화됐기 때문입니다. 2002년 김대업의 병풍(兵風) 사건과 2007년 김경준 BBK 주가조작 사건의 전철을 밟을지 주시하게 됩니다. 다만, 이번엔 수사 주체가 검찰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바뀌었네요.

이번 뉴스원샷은 공수처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 사주 의혹’ 입건 뉴스를 살펴보겠습니다. 공수처가 제보자의 공익신고를 받은 당일 9일 윤 전 총장을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공직선거법 위반 등 4개 혐의의 피의자(공제 13호)로 입건했다는 겁니다. (▶“죄는 다음 문제”…증거없이 윤석열 입건한 공수처의 해명)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공수처는 6월 4일 옵티머스 펀드사기 부실 수사(공제 7호)와 한명숙 전 총리 수사팀의 재소자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공제 8호) 사건으로 윤 전 총장을 입건하긴 했지만 지지부진한 두 사건과 달리 분위기부터 다릅니다. 제보자 휴대전화를 제출받은 다음 날인 10일 곧바로 김웅국민의힘 의원과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자택·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습니다. 공수처가 윤 전 총장 관련 의혹에 대해 강제수사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의혹의 배경들…조국·청와대 선거개입 기소로 ‘秋의 보복’ 시작


이 사건은 현직 검찰총장이 총선 직전 측근 검사를 시켜 야당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당시 비례대표 후보자) 등 여권 인사들의 고발장을 전달했다고 의심받는 그 자체로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입니다. ‘정의’와 ‘공정’, ‘상식’을 내걸고 대선 출사표를 던진 윤 전 총장으로선 진위에 따라 당장 국민의힘 경선에서 치명타를 맞을 수 있습니다.

공수처가 ‘죄의 유무는 둘째 문제’라며 검찰총장이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해 여권 후보자의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는 사안의 중대성을 윤 전 총장을 공무원선거관여금지 위반 등 혐의로 신속히 입건한 명분이기도 합니다.

여기선 사건이 벌어진 당시 배경과 맥락부터 짚고 '확인된 사실관계'와 추정과 의심은 분리하겠습니다.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인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은 현재로썬 추정과 의심일 뿐 증거로 입증된 건 없는 상태이기 때문 입니다.

현재 드러난 사실을 요약하면 김웅 의원(미래통합당 서울 송파갑 후보자)이 4·15 총선 직전 조성은(33)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 ‘손준성 보냄’이란 표기가 적힌 두 개의 고발장과 관련 자료를 전달했다는 겁니다. 의혹이 커진 건 당시 문재인 정부 여권 핵심부와 윤석열 총장 관계가 이미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조국 수사가 계기였죠.

윤 총장과 한동훈 대검 반부패부장 지휘 아래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를 2019년 11월 11일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의혹으로 구속기소한 데 이어 12월 31일 조 전 장관 본인도 불구속기소했습니다. 2020년 1월 29일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정무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청와대를 정면 겨냥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무더기 기소가 이뤄졌습니다.

조국 후임인 추미애 장관이 취임 닷새 만에 1월 8일 한동훈 반부패부장, 박찬호 공공수사부장, 이원석 기획조정부장 등 대검 참모 검사장을 몽땅 교체한 ‘윤석열 사단 학살’ 인사로 보복하는 이른바 ‘추·윤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추 장관은 1월 23일 후속 고검검사급 인사에서 윤 총장의 김유철 수사정보정책관 유임 요청을 묵살하고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당시 원주지청장) 검사로 교체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고발사주’ 의혹 핵심 손준성 누구…秋도 尹측도 “저쪽 편”)

윤석열, 손준성-김웅 ‘고발 사주’ 의혹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혹 핵심 등장인물은 3명…두 개의 고발장, 3개의 사건


고발장 전달 경로에서 드러난 핵심 등장인물은 3명이고 여기에 윤 전 총장은 빠집니다. 먼저 확인된 건 10일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해 “내가 제보자”라고 공개한 조성은 전 선대위 부위원장과 김웅 의원 두 명입니다. 두 사람은 조씨 휴대전화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방에서 고발장 등 자료를 주고받은 당사자입니다.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이 1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조 전 부위원장에 따르면 “2020년 4월 3일과 8일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자로부터 텔레그램 메신저로 두 개의 고발장과 첨부 자료 이미지 파일 100여장을 받았고, 김 후보자가 직후 전화로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대검 민원실로 접수하라’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기자들을 왜 고발하나’ 의아해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다른 당 관계자에 전달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의원이 전달한 고발장과 첨부 자료 100여장의 파일에는 ‘손 준성 보냄’ 표시가 같이 따라온 겁니다. 텔레그램은 대화나 파일을 전달할 때 원래 메시지 작성자의 이름이 표시됩니다. 이 표시가 김웅 의원의 사법연수원 29기 동기이자 검사 생활을 함께한 동료인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자료를 보낸 원작성자일 것으로 의심하는 이유입니다.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이 김웅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받은 자료 캡처 화면.[JTBC]

두 개의 고발장 중 먼저 4월 3일 전달된 고발장은 20쪽 분량입니다. 이 고발장은 두 개의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MBC가 같은 해 3월 31일 보도한 ‘채널A 이동재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와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의 2월 17일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보도를 묶어서 여권 인사들이 제보자 지모씨를 배후 조종한 기획 보도라며 공직선거법상 방송·신문 등 부정이용죄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피고발인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및 MBCㆍ뉴스타파 기자들과 PD 등 13명입니다.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씨와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기 때문에 여권은 “윤 전 총장이 배후”라고 공격합니다. 반면 윤 전 총장은 “제 처(사건)와 한동훈 검사장 채널A 두 건을 묶어서 고발장을 쓴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고 도무지 검사가 작성했다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라며 “4월 3일 일어난 일이 4월 3자 고발장에 들어가 있는 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합니다. 실제 고발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괴문서” 발끈한 윤석열…작년 4월3일 고발장에 뭐가 있길래)

4월 8일 고발장은 최강욱 대표(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만 피고발인으로 한 다른 내용의 8쪽 분량 고발장입니다. 최 대표가 같은 달 2일 유튜브 방송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자신의 법무법인에서 ”실제 인턴 활동을 했다“고 말해 허위사실을 공표(공직선거법 위반)한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최강욱 대표 고발장은 실제 고발로 이어졌다는 의혹도 받습니다. 총선 4개월 뒤인 8월 25일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인 조모 변호사가 거의 같은 내용으로 최 대표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 변호사는 김웅 의원이나 조성은씨가 아니라 정점식 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장이 당무감사실을 통해 전달한 고발장 초안을 토대로 고발장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제3의 고발장’ 의혹이 불거진 상황입니다. 실제 최강욱 대표 고발 경위 역시 향후 수사에서 밝혀야 할 내용입니다.

최 대표는 이 고발로 같은 해 10월 재판에 넘겨져 지난 6월 1심 유죄, 벌금 8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주요 관계인 입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손 준성 보냄’ 뿐인데 왜 ‘윤석열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


조 전 부위원장은 당시엔 ‘손 준성 보냄’ 표시를 봤지만 김웅 후보 캠프 관계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올해 6~7월 알고 지내던 뉴스버스 기자에게 대화방 내용을 보여줬다가 ‘검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됐고, 이것이 9월 2일 뉴스버스의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첫 보도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사실 손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 등 자료를 보냈다는 걸 입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손준성-김웅’ 사이 텔레그램 대화방이 지금도 남아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김 의원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총선 당시 제보를 받으면 (조 전 부위원장에) 전달한 뒤 대화방을 ‘폭파’(삭제)했고 당시 사용한 휴대전화도 바꿨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조 전 부위원장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의 로그 기록이나 100여장 이미지 파일에서 원작성자(촬영·저장·전송) 디지털 정보를 찾아내거나 10일 압수한 김웅 의원 새 휴대전화나 손준성 검사의 휴대전화와 PC에서 똑같은 파일을 찾아내 ‘손준성 보냄’을 입증하는 겁니다. 만약 어디서도 ‘손준성→김웅’ 전달을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수사는 난항에 빠지고 장기화될 수도 있습니다.

더 문제는 그다음 단계입니다. ‘손준성 보냄’을 입증하더라도 손 검사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자료를 보냈다는 근거를 찾아내는 건 별도 수사가 필요합니다. 현재로썬 이 수사의 마지막 단계까지 가려면 대선 주자를 상대로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을 벌이거나 김웅 의원이나 손준성 검사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증거로 밝히기 쉽지 않은 의혹임에도 불구하고 여권과 언론이 윤 전 총장과 관련성을 의심하는 건 수사정보정책관이란 자리 때문입니다. 수사정보정책관은 총장 직속으로 산하엔 수사정보1ㆍ2담당관(부장검사)을 거느린 검찰의 범죄정보 수집을 총괄 기획·조정·지휘하는 요직이었습니다. 과거엔 범죄정보(범정)기획관으로 불린 막강한 자리입니다. 김오수 현 검찰총장도 2008년 범정기획관 아래 범죄정보1담당관을 지낸 적도 있습니다.

현재 이 자리의 의미는 대폭 축소됐습니다. 손 검사를 임명했던 추미애 장관이 지난해 9월 정책관과 1·2담당관을 ‘수사정보담당관’ 한자리로 통폐합하고 대검 차장검사의 보좌기관으로 바꿔놨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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