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최후호소 "폐교는 막아달라"..당국 "특성화고도 안돼"
학생 수가 줄면서 지방 학교가 폐교한다는 소식은 드문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한 산골 학교가 문을 닫으려 한다는 소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국에서 우수 학생이 모이는 민족사관고가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에 따라 2025년 일반고교 전환을 앞둔 민사고는 왜 폐교를 고민하고 있을까.
강원 횡성군 민사고에서 만난 한만위 교장은 "일반고로 전환하면 전국에서 학생을 뽑아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지금의 교육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며 "건학이념을 지키지 못한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사고가 일반고가 되면 전체 인구의 3%에 그치는 강원도에서만 학생을 뽑아야 한다.
국·영·수 30%뿐..."일반고 되면 민사고 교육 못 해"
하지만 자사고 지위가 사라지면 이런 교과를 유지할 수 없다. 일반고가 되면 지금보다 필수교과 편성을 대폭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선발권도 사라져 현재 전체 교직원의 90%에 달하는 석 박사급 인력 채용도 어려워진다.
민사고 측은 대안학교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한 교장은 "대안학교로 전환하려면 민사고를 폐교한 후 다시 문을 열어야 한다"며 "현행법상 학교법인은 문을 닫으면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사고는 1996년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이 사재 약 100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128만 제곱미터(약 39만평) 넓이의 교지에 20여년간 투자가 이어지면서 현재는 교육시설이 약 20동에 이른다. 모든 시설은 민사고가 한 번 문을 닫으면 다시 대안학교에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대안교육 특성화고' 원하지만…교육청 '반대'
하지만 지정 권한을 가진 강원도교육청은 대안교육 특성화고 전환에 부정적이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일반고 전환이라는 교육부 정책의 큰 틀을 벗어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교육청이 나서서 개별 학교의 지위를 바꾸진 않겠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민사고를 어떤 형태든 존속시키는 대안을 진보교육감이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에 참여한 해직교사 출신 진보 교육감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민사고의 교육 방식이 '평준화'를 강조하는 진보 교육감의 철학과 어긋난다"며 "소수정예를 강조하는 민사고를 그대로 존속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영재학교' 전환도 안 된다는 교육 당국
김혜림 교육부 고교교육혁신과장은 "법적인 부분을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영재교육은 특정한 분야에 능력을 갖춘 학생을 가르치는 거라고 본다"며 "'과학예술영재학교'도 있지만, 과학고랑 유사한 점을 고려하면 민사고가 영재학교의 취지에 맞는지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년째 해결책이 나오지 않자 민사고는 전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이창규 민사고 사무국장은 "융합형 인재를 키운다며 수능에서 문·이과 구분도 폐지하면서, 영재교육은 칸막이를 쳐놓고 있다"며 "해외에는 인문학 영재를 키우는 학교가 많지만, 유독 우리는 이공계 영재만 인정한다"고 꼬집었다.
교육 전문가들은 영재교육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학이나 과학에만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보는 건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 간의 소통이나 여러 학문 간 융합 능력이 중요하다"며 "특정 분야로 영재교육을 제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올바른 엘리트 키워야"
'자사고 일괄 폐지'가 대표하는 교육 평준화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한 교장은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교육만 하게 하면 인재는 결국 해외로 나간다"며 "이런 학생을 모아서 민족, 역사를 가르치며 키워내는 곳이 한 곳은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고교 체제 개편은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괄 폐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 모집도 못 하는 자사고는 문을 닫아야 하지만, 역사도 길고 제대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며 "몇몇 학교 때문에 자사고 폐지를 뒤집을 순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특별한 시간' 동선 다 털리고, 다 깐다…SNS 국정원장 논란
- 중앙일보 - 초간단 세대 성향 판별기
- "北에 왜 세금 퍼주냐" 집 없는 20대, 40대와 이렇게 갈라졌다[2040 세대 성향 리포트]
- 뺨 때린 중국계 부인 떠나고…'한국인 부인' 벨기에 대사 왔다
- 소변 못가리고 악몽 꾸던 아들…학교에 녹음기 숨겨 보냈더니
- 항암 치료 대신 태아 선택…한쪽 다리 절단한 숭고한 모정
- 박지원 "김건희 관상 좋다는 얘기까지 했는데…”尹에 배신감
- 홍준표 측근이 롯데호텔 38층에? "전 재산 걸고 조·박 안 만났다"
- 이낙연과 다른 이재명…이대녀 잡고싶은 그에게 보내는 그림 [류호정이 요구한다]
- 7kg 빠져 헬쓱해진 송해 "내가 생각한 전국노래자랑 후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