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게이트' 프레임에서 조금씩 발 빼는 국민의힘 지도부
[경향신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제기된 ‘고발 사주’ 의혹에 대응하는 국민의힘의 단일대오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당초 국민의힘은 ‘고발 사주→박지원 게이트’ 프레임으로의 전환을 위해 총력전을 벌였지만, 당 지도부가 조금씩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도부의 온도 변화는 의혹 던지기식의 프레임 대결이 대선에서 당 전체적으론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20·30세대들이 국민의힘 대응에 부정적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수사기관의 정보를 당이 알 수 없어 대응이 어려운데다, 그 수사 결과에 따라 당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5일 ‘박지원 게이트’ 프레임 전략의 수정을 암시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 ‘명불허전 보수다’ 강연에서 “국정원장의 정치개입을 당 차원에서 강하게 지적했다. 저도 강하게 (의견을) 내고, (박 원장의) 거취 표명까지 얘기했다”며 “(하지만) 그 메시지에 반응하는 세대는 박 원장을 오래 알아오고 경기 일으키는 우리 전통의 지지층이고, 20·30 세대는 강하게 박지원에게 타박하는 메시지를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이게 전형적으로 지지층이 똘똘 뭉치지 못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발언은 프레임 짜기식 역공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상 전략 수정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전날 김기현 원내대표가 기자들에게 ‘고발 사주’ 의혹 대응에 대해 “당 따로 윤 전 총장 캠프 따로 있고, 당은 당의 역할, 후보는 후보의 역할이 있으므로 별개의 것을 같이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분리 대응’ 원칙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 앞서 열린 긴급현안 보고에서 제보자 조성은씨를 겨냥해 “제2의 윤지오가 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박 원장과의 관계보다는 조씨 개인을 공격한 셈이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도부 내에서 ‘박지원 게이트’ 프레임을 계속 끌고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공수처 등의 수사 기관이 정보를 독점적으로 쥐고 있어서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고, 향후 수사 결과에서 윤 전 총장과의 관련성이 드러날 경우 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전선에서 윤 전 총장을 지원하던 김재원 최고위원(당 공명선거추진단장)도 이날 TBS 라디오에 출연해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면 둘이, 둘 간의 법률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박지원 게이트’ 프레임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온도차가 느껴진다. 김 최고위원은 이어 “예를 들어서 처음부터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이런 파일을 보낸 게 확실하다. 그렇게 보도했다면 당에서 이런 공명선거추진단이 개입할 일이냐”고 말했다. 당에서 공식 대응할 문제도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입장 변화는 홍준표 의원과 윤 전 총장 간의 갈등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은 이 문제를 두고 연일 ‘분리 대응’을 강조해왔다. 홍 의원은 이날도 MBC 라디오에 출연해 “고발사주 의혹 거기에 당이 인볼브(관여)가 돼 버리면 당이 빠져나가기가 어렵다”며 “지금은 11명이 경선하고 있는데 특정 후보를 위해서 나섰다가 나중에 실체가 밝혀지면 당이 공범으로 처리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걱정”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달 11일 박 원장과 제보자 조성은씨가 만났을 때 동석자가 있었고, 그 동석자가 홍 의원 캠프 관계자라는 의혹을 두고는 “한번만 더 내 캠프를 음해하면 그때는 각오하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힘이 ‘박지원 게이트’ 프레임을 완전히 폐기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정보위원들은 이날 국정원을 찾아 박 원장을 향해 “정치개입을 하지 말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윤석열 캠프 김병민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조씨가 김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을 삭제한 채 증거를 제출했다고 언급하면서 “진실 규명의 스모킹건(결정적증거), 대화방을 스스로 없애버린 행동으로 조씨의 그간 발언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제보 동기에도 더 큰 의구심이 생긴다”며 의혹을 키워 나갔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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