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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폭탄, 닥치는 대로 알바.. 김 사장님 부부의 폐업 그 후

박민지,신용일,전성필 입력 2021. 09. 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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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의 눈물, 폐업 그 후]
'사장님' 불리다가 이젠 '김씨'로
"지금은 먹고 사는 게 가장 걱정"


김모(38)씨가 2019년 카페를 창업할 당시만 해도 폐업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김씨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 전부터 ‘카페 창업’이라는 같은 꿈을 꿨다.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뒤 창업 준비에 매진했다. 시장 조사부터 상권 분석, 마케팅 방법 등을 연구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양가 부모님이 은퇴 자금 일체를 지원해주신 이유도 부부가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의 목돈과 퇴직금을 더해 보증금과 창업 준비 비용을 마련했다.

부부는 개업에 앞서 나란히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 카페에 진열된 MD상품부터 커피 원두, 머그컵, 쿠폰, 메뉴판 등 모든 물건은 발품을 팔아 준비했다. 여행사에서 근무했던 김씨 이력을 살려 ‘외국인이 찾는 카페’라는 콘셉트도 정했다. 외국인 대상 관광 패키지 투어에 카페를 거치도록 하는 계약도 몇 건 따냈다.

카페는 활기가 넘쳤다. 월세 400만원과 유지비를 내고도 직장에서 벌던 수입보다 많았다. 창업 6개월 후부터는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을 고용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다. 동네 단골도 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끊겼다. 김씨는 “어떤 날은 오전에 한 팀, 오후에 한 팀만 오는 경우도 있었다”며 “1인 1메뉴 원칙을 없애고 닥치는 대로 손님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밤마다 “조금만 버티면 나아질 거야”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된 지난해 12월 초부터 가게를 열수록 손실이 커졌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해고했다. 월세는 김씨가 투잡으로 한국인 관광객 가이드를 하며 겨우 메꿨다.

올해 들어 부부는 더 이상 카페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2층 계약을 해지했다. 카페 내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김씨는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는 게 힘들어 액자로 가려 놓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버텼으나 결국 1층 계약까지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가게를 처분하자 남은 건 빚밖에 없었다. 은행 대출에 나랏빚까지 수천만원을 떠안았다. 생활비를 줄여야 했다. 갖고 있던 중형 SUV를 판 뒤 중고 소형차를 구매했다. 나중에 태어날 아이 몫까지 생각해 구해 놨던 방 세 개짜리 빌라도 사치였다. 이를 팔아 36㎡(11평형) 1.5룸으로 이사했다. 소파나 식탁도 중고로 팔아치웠다. 김씨는 “허리띠를 졸라매도 대출금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폐업 후 주변과도 연락을 끊고 지냈다. ‘실패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끄럽고 창피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많은데 ‘나는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고 전했다.

어느 날 새벽 아내가 베란다에 웅크려 울고 있는 모습을 본 뒤 김씨는 다시 밖으로 나섰다. 패배감에 넋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현재 김씨는 아르바이트로 한 소규모 업체 사무를 본다. 김씨 아내도 인근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김씨는 “한동안 ‘사장님’으로 불리다가 이제는 ‘김씨’로 불린다”며 “성실하게 세금 내면서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해왔는데 폐업은 고스란히 우리 가족만이 감당해야 했다. 언제 대출을 갚고 재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직격탄으로 김씨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은 폐업 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서울 종로구에서 13년간 음식점을 운영하던 김모(48)씨는 지난달 가게 문을 닫았다. 그는 “장사만 하며 살던 내가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당장 아내, 초등학생 자녀 두 명과 함께 생활할 돈이 필요했다. 김씨는 “매일 단기 아르바이트 공고를 들여다보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일단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모(35)씨도 지난 4월 음식점을 정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다 4년 전 큰 용기를 내 얻은 가게였다. 수입원이 사라진 지금 그는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음식 배달,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아직은 노하우가 없어 월세와 대출금 이자 정도를 간신히 번다. 김씨는 “동생에게 ‘당분간 부모님 용돈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며 “처음에는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지금은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꿈에 부풀어 창업한 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에 맥없이 쓰러지고 있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비법인기업(자영업자)의 은행 대출금 잔액은 418조5050억원으로 전분기(409조881억원)보다 9조4169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에서 올해 1분기 10조5104억원 증가한 데 비해 증가 폭은 줄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5조~6조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었다. 지난해 2분기에 전분기 대비 증가 폭이 21조1655억원으로 치솟은 이후 4분기 연속으로 9조~10조원대를 유지 중이다.

산업별로도 자영업자가 집중된 서비스업 대출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났다. 올해 2분기엔 지난 1분기보다 약 33조7000억원 늘어 전체 기업·자영업자 대출 증가분의 79%를 차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난해 2분기 약 47조2000억원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다. 비법인기업이 예금은행이 아닌 상호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 취급 기관에서 빌린 돈까지 감안하면 실제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드러난 것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박민지 신용일 전성필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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