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국일보

南 SLBM 보유국 된 날, 北 탄도미사일 쐈다

조영빈 입력 2021. 09. 16. 04:30 수정 2021. 09. 16. 14:41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김여정, 문 대통령 '北도발 억지' 발언 비난도
북한이 올해 3월 25일 신형전술유도탄을 시험 발사하는 장면.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북한이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공개한 지 이틀 만인 15일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로 쏘아 올리며 고강도 무력 시위를 재개했다. 한국에 있던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다른 나라들도 군사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군의 사상 첫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까지 같은 날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이 탄도미사일로 ‘맞불’을 놓은 격이 됐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금지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는 더욱 높아졌지만, 여전히 사거리가 ‘단거리(1,000㎞ 이내)’에 국한된 건 북미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압박 강화의 목적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우리 군 당국의 SLMB 시험발사와 관련해 "북한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도 직격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이 부적절한 실언을 했다"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상)대방을 헐뜯고 걸고 드는데 가세한다면 북남관계는 여지없이 완전 파괴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北, 순항→탄도미사일 도발 패턴 반복

북한 주요 탄도미사일 비교. 그래픽=송정근 기자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군 당국이 낮 12시 34분과 39분쯤 평안남도 양덕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미사일 고도는 60㎞, 발사거리는 800㎞로 측정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올 들어 다섯 번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인 1월 22일과 3월 21일 각각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같은 달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 이달 11, 12일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점에서 3월 ‘순항미사일→탄도미사일’ 패턴과 비슷하다.

아직 이날 발사된 탄도미사일의 실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한미 정보당국이 세부 제원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했다. 다만, 북한이 사거리 연장에 집중하는 이른바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지대지 미사일 계열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2019년 5월 사거리 240㎞짜리 KN-23을 처음 시험 발사했다. 이어 올 3월에는 탄두 중량을 기존 1톤에서 2.5톤까지 늘리고 사거리도 600㎞까지 확장된 신형 KN-23을 선보였다. 일단 사거리가 다소 늘어나다 보다 개량된 형태로 추정된다. 신종우 한국국방포럼 사무국장은 “3월처럼 2발인 점과 저고도 비행을 했다는 점에서 비행안정성을 확보한 다음, 이번에는 내륙에서 동해로 KN-23을 시험 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사거리만 증가한 게 아니라 ‘핵탄두 소형화’ 기술력에 필요한 과정이란 견해도 있다.


中 왕이 방한 일정 노린 듯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하기 전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북한의 노림수는 여럿이다. 미사일을 매개로 단시간에 도발 수위를 높이는 전술은 북한의 전매특허다. 우선 대미 압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1월 8차 노동당 대회를 통해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바이든 행정부 임기(2021~2025년) 때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북핵협상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미사일 발사 빈도와 강도가 동시에 올라가고 있는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추가 도발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중국이라는 ‘뒷배’를 과시하는 성과도 거뒀다. 탄도미사일 발사는 왕이 부장의 방한 일정 한가운데에서 이뤄졌다. 중국의 묵인이 있었을 법한 대목이다. 미국과의 대화 재개 협상이 전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자 ‘중국 고위관리 방한’이라는 외교 이벤트에 군사행동 이슈를 끼워 넣어 한미에 북핵 문제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날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만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속내는 따로 있는 듯하다. 그는 취재진에게는 “북한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군사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대북적대 정책만 펴는 탓에 북한의 군사 조치를 나무랄 수 없다는 뜻이다.

2021년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개인 명의의 글을 통해 “미국이 반(反)중국 압박 공세의 일환으로 대만 문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중국 주권과 영토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왕 부장 방한에 맞춰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에 나선 것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갈등이 고조될수록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살 것”이라며 “앞으로도 단거리 탄도미사일 정도의 군사 도발은 딱히 제어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남측 '탄도미사일' 시험 맞불

국산 기술로 설계·건조된 해군의 첫 번째 3,000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6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이날 남측의 SLBM 최종 발사가 진행된 점도 의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을 만큼 세계 7번째 SLBM 보유국을 축하하는 잔치 분위기에 누가 봐도 탄도미사일 맞대응으로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게다가 남측 행사에 앞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대결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