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백신 안 맞았어? 밥은 다음에 먹자”

이해인 기자 2021. 9. 16.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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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코너] 접종 여부가 모임·약속 기준으로 직장가에선 미묘한 갈등

“백신 안 맞았으면 ‘투명인간’ 아니네. 다음 번에 보자, 미안.”

서울 광화문의 직장에 다니는 김모(41)씨는 지난 10일 회사 동료들과의 저녁 약속에 합류하려다 결국 끼지 못했다. 수도권 거리 두기 지침상 오후 6시 이후에는 모임 허용 인원 2인에 백신 접종완료자 4인을 더해, 총 6명까지 모일 수 있다. 최근 직장가에서 백신을 2차까지 모두 맞고 2주일이 지난 접종완료자들은 ‘투명인간’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김씨는 “백신 접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미접종자에겐 역(逆)차별로 작용한다”며 “요즘 저녁 약속 잡을 때 백신 접종 여부를 따지는 일이 많다 보니 나 같은 미접종자는 민폐를 끼치는 거 같은 기분마저 든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 4주 연장 첫날인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 거리두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수도권 등 4단계 지역 식당 및 카페 매장 영업 시간은 오후 9시에서 10시까지 1시간 연장되며, 백신 접종 완료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용돼 모임인원 제한이 완화된다. 2021.9.6/연합뉴스

백신 접종자가 점차 늘면서 최근 직장가에선 접종 여부를 둘러싼 미묘한 ‘백신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사적(私的) 모임을 꾸릴 때도 접종자들을 우선적으로 모은다. 반면 미접종자들은 “물량이 모자라 늦게 맞게 됐을 뿐인데 눈총 받는 게 억울하다”거나 “부작용이 걱정돼 안 맞고 있는데 사실상 접종을 강요받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코로나에 예민한 일부 직장인은 백신 미접종자와 접촉을 꺼리기도 한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은행원 최모(29)씨는 “나는 6월에 얀센 백신을 맞았는데, 할머니 안전을 위해 백신 안 맞은 동료와의 자리는 가급적 피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은근한 눈치’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까지 느껴진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충청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김모(34)씨는 “임신을 계획하고 있어 백신 접종을 미뤘는데, 3개월째 직장 동료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접종자에 대한 병원 지침 때문에 매주 코로나 검사를 받아 결과를 제출하고 있는데, 일부 동료에게 ‘백신을 왜 안 맞느냐’ ‘유난 떤다’는 면박을 받으니 기분이 안 좋다”고 했다. 개인 사정이 있어 백신을 맞지 않았을 뿐인데 부담을 갖게 만드는 건 지나치다는 것이다.

부작용 우려 때문에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5년 차 직장인 박모(32)씨도 “요즘엔 사람들 안부 인사가 ‘백신 맞으셨어요?’가 된 것 같다”며 “지금까진 ‘잔여 백신’ 신청에 실패했다고 둘러댔는데 최근엔 사내에 백신 접종센터까지 차려져, 어쩔 수 없이 추석 이후로 예약은 했지만 여전히 찝찝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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