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싸움 잘해" 순경 얼굴에 날아온 주먹..맞기만 하는 이유
수도권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순경 A씨는 지난달 29일 저녁 9시쯤 "술 취한 20대 남성이 왕복 3차선 도로 위에서 행패를 부린다"는 신고를 받아 출동했다. 상황 수습은 쉽지 않았다. 만취한 남성 B씨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욕설과 반말을 내뱉다 도로 위에 대(大)자로 눕기까지 했다. A 순경은 B씨를 억지로 순찰차에 태웠다. 업무 지침상 '보호조치' 해야하기 때문이다. 경찰차에 탄 B씨는 "나 서울대 나왔어" "싸움 잘해"라더니 A 순경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A 순경은 "올해만 벌써 세번째"라며 "지난 2월 지구대에 배치됐는데 반년동안 폭행을 여러차례 당하다보니 이제 만취자 신고만 들어오면 긴장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이 있을 때 공무집행방해죄로 입건할 지 고민된다"며 "경찰이 폭행당하는건 워낙 자주 일어나는 데다 입건된다해도 처벌 수위는 높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8월까지 공무집행방해 사건은 총 5218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8년 9633건 △2019년 9588건 △2020년 9538건 등으로 한 해동안 1만건에 가까운 공무집행방해 사건이 발생했다.
한해 동안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수는 1만명을 웃돈다. 최근 3년 평균은 1만1400명 정도다. 올해도 8월까지 5829명이 같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통계상 피해자 직업이 분류되지는 않지만 공무집행방해 피해자의 80% 이상은 경찰관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경찰관 폭행을 포함한 공무집행방해 문제는 심각하다. 경찰청이 지난 6월 현장 경찰관 4864명을 대상으로 공무집행방해와 관련한 자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8%가 피해자가 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88%는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 행위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광복절 연휴에는 불법집회를 막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 봉쇄에 나선 경찰관들이 시위참가자들에게 폭행 당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신고를 받고 출동해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을 집행하는 현장활동을 보호해줘야하는데 공무집행방해로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다른 피해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경찰관 폭행과 같은 공권력 경시문제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닌데 엄중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아쉽다"며 "경찰관이 불법행위에 적법하게 대응하도록 지원방안 마련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폭행 혐의로 입건한다고 하더라도 처벌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낮아 경찰관들이 따로 수사하지 않고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혐의가 확정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처벌이 이뤄진다해도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지난 1월 박원규 군산대 법학과 교수와 연구진이 펴낸 '체감치안만족도 제고를 위한 올바른 공권력 확립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무집행방해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4.2%에 그쳤다. 대부분 집행유예(50.3%)로 풀려나거나 벌금형(31.3%)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들은 경찰폭행이 끊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법원 판결'을 꼽았다. 지난 6월 자체 설문조사에서 경찰 폭행이 왜 계속 벌어지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1%가 "법원의 관대한 판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공무집행방해죄가 엄정하게 처벌되는지에 대한 답변으로는 77%가 "적절하지 않다"라고 했다.
폭행 사실을 입증하기 까다로워 경찰 사이에서는 폭행을 당하더라도 입건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달 폭행을 당한 A 순경은 "입증책임이 피해자인 경찰관에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며 "바디캠 영상 같은 증거를 내야 하는데 이마저 없다면 동료 경찰이나 목격자 진술을 직접 받아야 해 번거롭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무집행방해죄의 감형 요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원규 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상당수는 피의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다"며 "술에 취했다고 감형하면 제도의 처벌과 예방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일의 경우 술에 취한 건 개인의 책임으로 본다"며 "본인 선택으로 술에 취했기 때문에 이를 감형 요소로 고려해선 안된다"고 했다.
상습범이라면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반적인 폭력 범죄는 상습범일 경우 가중처벌되지만 공무집행방해는 양형 기준 상 '상습범'이 명시돼있지 않다.
박 교수는 "법을 한번 위반한 사람이 또 저지를 우려가 높으니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위험 수위의 폭력을 휘둘렀다면 외국처럼 엄벌해야 경찰 폭행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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