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코로나19 확산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17일 고인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심정을 가진 다양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조문객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길 가던 시민들과 여야 정치인들도 띄엄띄엄 빈소를 찾았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자비대위)가 당초 전날 오전 서울 도심에 설치하려고 했던 분향소는 전날 오후 9시40분쯤에야 국회 앞에 마련됐다. 비대위가 천막 설치 등을 불허한 경찰과 8시간 대치를 벌인 끝에 겨우 마련한 조그마한 공간이다. 설치 이틀째인 이날 분향소 주변은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조문객들의 애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조문객들은 얼굴 없는 영정 앞에 향을 피우거나 국화를 내려놓았다. 영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얼굴 사진이나 그림 대신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9년째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49)는 헌화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나도 2년째 빚에 시달리고 있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빚이 돌아갈까봐, 지인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면서 “(정부가) 자영업자들을 조금만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추석 연휴 영업 계획에 대해 “그냥 가게 문을 못 열 것 같다”며 “열어도 손님이 한두 팀 정도 오거나 아예 오질 않으니까”라고 했다.
조문은 경찰 통제 하에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경찰 인력과 폴리스라인이 차도를 제외한 분향소 주변 3개 면을 둘러싸고 있었고, 경찰 버스 7대가 동원돼 ‘차벽’이 세워져 있다. 차벽에 가로막혀 사실상 외부에서는 분향소를 볼 수 없는 상태다. 비대위는 천막 안쪽에 제단을 설치해 ‘정식 분향소’를 만들려 했지만 경찰에 제지당했다. 그래서 천막 바깥에 흰 천을 깔아놓기만 한 ‘임시 분향소’ 형태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오전 분향소를 방문한 시민 김모씨(51)는 “돌아가신 분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이름 난 사람들은 다들 넓은 공간에서 추모를 하는데 왜 저분들은 이렇게 답답하게 가둬둬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알음알음으로 분향소 설치 소식을 알고 찾아온 ‘동병상련’의 자영업자들은 박씨처럼 눈시울을 붉히거나 무거운 침묵으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비대위는 이날 오후 3시까지 2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 확산과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이, 세상을 등진 동료들을 애도하기 위해 차려놓은 분향소조차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거리 두기’의 단속 대상이 된다. 경찰과 영등포구청은 분향소 주변 4곳에 ‘감염병예방법 제49조에 따라 집회를 금지한다’는 큼지막한 안내문을 설치해뒀다. 안내문 하단에는 ‘위반시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고, 그 옆에는 촬영용 카메라를 준비해 놓은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야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현장을 찾았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낙연 전 의원과 박용진 의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과 황교안 전 대표, 심상정 전 정의당 의원 등 대선주자들도 앞다퉈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애도를 전했다.
이홍근·오경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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