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언론에 '부르카' 씌우려는 자들

노석조 기자 입력 2021. 9. 18. 03:01 수정 2021. 9. 1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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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또 국제사회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6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철회를 촉구하는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냈다. 언론중재법은 이른바 ‘악의적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HRW는 서한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억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7일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협의체 8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1.09.17 국회사진기자단

최근 몇 달간 국경없는기자회,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등 국제 단체는 물론, 국내 거의 모든 정당과 언론 단체가 한목소리로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언론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관련해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는 단골은 쿠바·짐바브웨·아프가니스탄·북한 같은 데 아닌가.

아프가니스탄 인권 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부르카’다. 부르카는 여성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펑퍼짐하게 가린 옷을 말한다. 탈레반 정권은 자기 나라 여성들에게 이런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당사는 물론 가족까지 가혹하게 징벌한다. 국제 인권단체가 ‘부르카 법’을 비판하는데도 탈레반은 되레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부르카는 여성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자기들만의 생각에 매몰돼, 인권과 자유의 침해라는 문제는 보지 못한다. 자신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여성들(왼쪽)과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 /조선일보DB

이런 일이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징벌법에 대해 나라 안팎에서 철회를 요구하는데도 민주당은 이를 듣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마지못해 ‘8인 언론협의체’를 만들어 오는 26일까지 숙의 기간을 거치기로 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독소 조항’은 좀처럼 고치려 하지 않고 있다. 결국 ‘협의체’는 일부만 살짝 손보는 정도의 구색 맞추기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16일 재차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언론중재법을 오는 27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겠다”고 강행을 예고했다.

두 달 전쯤 현 정권의 실세는 여론 조작이라는 중범죄를 저질러놓고도 반성은커녕 대법원 유죄판결이 나오자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현 정권이 앉힌 대법관이 전체 14명 가운데 12명인 대법원의 판결도 ‘허위’라고 한 셈이다. 그는 사건 초 자신의 범죄 행각을 파헤친 보도를 “악의적 허위 보도” “가짜 뉴스”라고 몰았고, 수감되는 그 순간까지 ‘악의적 허위·조작 해명’을 했다. 그는 ‘언론 부르카 법’이 서둘러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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