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호주와 중국
악명 높은 호주 ‘백호주의’는 사실 ‘중국인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19세기 중반 호주 골드러시 때 중국인도 대거 유입됐다.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인종이 다른 중국인은 질시와 경계 대상이었다. 1855년 멜버른에 1만명 넘는 중국인이 도착하자 당국이 중국인 입국 허가에는 엄격한 제약을 두기 시작했다. 법으로 못 박은 호주 백호주의는 1973년에야 철폐됐다.
▶1990년 무렵부터 호주가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호주와 중국은 밀월 관계로 들어섰다. 2014년 ‘중국 부호가 선호하는 이민 국가 톱10’에서 호주가 1위였다. 중국 부자들과 유학생이 쏟아져 들어가 호주 부동산은 연일 호황이었다. 케빈 러드 전 총리(2007~2010년 집권)는 서방 지도자 가운데 손꼽히는 중국통이었다.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 이름까지 있다. 2007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 때 중국어로 연설해 후진타오 주석이 놀랐다. 호주국립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자녀 셋 모두 중국어 공부를 시켰을 정도로 중국 사랑이 극진했다. 상당 기간 호주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외교 노선으로 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하지만 호주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너무 많은 중국 투자와 중국인 유입이 반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호주 방송사 ABC가 중국계 돈이 유력 정치인과 정당에 흘러들어 친중 정책의 로비 자금이 된다는 보도를 했다. 중국 공안의 조종을 받는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에 비판적 발언을 하는 학생의 신상 캐기를 한다는 폭로도 나왔다. 작년 10월 여론조사 결과 호주의 중국 혐오도는 81%에 달했다. 2019년 홍콩 시위, 2020년 코로나 확산은 반중 정서의 기폭제가 됐다.
▶2018년 집권한 스콧 모리슨 총리는 처음엔 “미, 중 사이에서 택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을 택했다. 호주는 한국 못지않게 중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 소고기, 와인, 보리 등의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며 고강도 경제 보복을 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이상이다. 하지만 모리슨 총리는 “호주가 수십 년간 만끽해온 호의적 환경은 끝났다”면서 결의를 보였다.
▶미국·영국·호주 협력체 ‘오커스(AUKUS)’가 출범했다. 미국은 핵 추진 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넘기는 놀라운 결정까지 내렸다. 호주는 4국 안보 협의체 ‘쿼드’에도 참여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호주의 친미 반중 결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미국이 호주에 어떤 신뢰를 보낼지는 분명하다. 그 증거가 한국에는 불허하는 핵 추진 잠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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