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호랑이보다 무서운 ‘대통령 資質 下落의 법칙’

강천석 논설고문 2021. 9. 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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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다 속병 깊어진 나라
지도자들 경박한 입과 천박한 낙관론, 좋은 조짐 못 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p씩 떨어진다고 한다. 문재인 시대에 1%를 찍었으니 다음은 0%대, 그다음은 마이너스 성장 시대로 접어들지 모른다.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공무원들은 필리핀 마닐라 행정대학원으로 연수를 갔다. 제철소(製鐵所) 견학은 파키스탄으로 갔다. 두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을 대할 땐 태도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먹거리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베네수엘라 국민도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경제는 국민 성격마저 바꾼다.

청와대 전경/조선일보 DB

경제의 ‘잠재성장률 장기 저하(低下) 경향’보다 더 뚜렷한 게 ‘대통령 자질(資質) 장기 하락(下落) 법칙’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판단력·현실 대처 능력·국가 미래 대비 역량(力量)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보다 낫다고는 못 한다. 두 사람은 때로 국가 차원에서 지지층의 뜻과 이익에 어긋난 결단을 내려 역풍(逆風)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건강보험·재정 적자·노동 개혁·교육 개혁 등 모든 어려운 문제는 다음 대통령에게 떠넘겼다. 국가 이익을 우선해서 ‘내 편’ ‘우리 편’ 이익에 칼을 대려 했던 일이 없다. 내일을 팔아 오늘의 지지(支持)를 샀다. 2020년 중국에서 1200만명, 일본에선 84만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한국 신생아는 27만명이었다. 대통령은 비서관이 써 준 걸 읽는 것 말고 이 문제가 나라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혼자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자질 하락의 법칙은 보수 진영에도 적용된다. 어느 누구도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처럼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나라를 세우고 나라의 틀을 바꾸는 과제와 정면 승부하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진정한 보수는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復古)가 아니다. 미래의 과제를 선취(先取)해서 도전해야 마당이 넓어진다. 터가 넉넉해야 높이 쌓을 수 있다. 보수는 빈부 격차(格差), 중앙·지방 격차 문제의 샅바를 잡고 씨름해야 한다. 격차의 그늘에 기생(寄生)하는 세력이 격차 문제를 정치 무기로 독점하는 사태를 방치하면 보수에 미래가 없다.

‘경제 잠재성장률 장기 저하 경향’과 ‘대통령 자질 장기 하락 법칙’이 맞물리면 국가의 재앙(災殃)을 만든다. 국가 지도자의 경박한 낙관과 천박한 역사 인식은 불길한 조짐이다. 이런 언동은 땅 밑에서 울리는 세계 지각변동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든다. 벼락부자가 된 듯한 대통령의 선진국 행세, ‘마침내 일본을 넘어선 나라가 됐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허풍선이 국회 연설이 그렇다. 그들은 무엇이 자신들을 선진국 궤도에 쏘아 올려놓았는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튼튼한 나라는 그 바탕에 진중(鎭重)한 비관론(悲觀論)이 얕게나마 늘 깔려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경거망동을 막는다.

역사는 200여 년에 걸친 영국 영화(榮華)가 끝나갈 무렵 20세기 초 영국 정치 지도자들을 ‘부박(浮薄)하다’ 했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처신이 가볍고 입이 헤펐기 때문이다. ‘영국의 세기’가 저물며 ‘미국의 세기’가 밝아오는 전환을 그들은 보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은 신속하게 아프가니스탄에 진공(進攻)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테러의 주체 알카에다는 산산조각이 났고,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미국 뒤에 섰다. 2001년 12월 시점에서 그 전쟁은 미국이 확실하게 승리한 전쟁이었다. 거기서 일단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을 장악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비탈진 땅에 민주주의 이식(移植) 실험을 벌이고 이라크로 전역(戰域)을 확대했다. 두 전쟁의 전비(戰費)는 6조4000억달러로 치솟고 사망한 미군 숫자는 쌍둥이 빌딩 테러 희생자의 두 배에 달했다. 오만(傲慢)이 ‘승리한 전쟁’을 ‘늪에 빠진 전쟁’으로 바꿨다. ‘오사마 빈라덴은 어떻게 미국에 승리했는가’라는 칼럼이 미국 신문에 실리는 배경이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단해야 할 때 계속하는 자 역시 승리하지 못한다’는 게 옳은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정권은 계속해야 할 것은 중단하고, 중단해야 할 것은 계속하면서 4년 반을 보냈다. 나라 곳곳에 깊고 퍼런 멍이 들었다.

내년 3월엔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 시장은 하락장(下落場)이고 금(金) 없는 금방(金房)이다. 미국 대통령 전기(傳記)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들이 모여 만든 책 제목이 ‘결국은 성품(性品)(character above all)’이다. 누구를 떨어뜨릴 것인가를 먼저 골라야 한다. 도금(鍍金)한 가짜 금부터 골라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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