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 여우, 미국 가던 날' 반려견도 해외입양 보내는 한국 [개st하우스]
코로나에 길 막혀..유기견들 무작정 대기 중
“워싱턴 DC로 가는 누나 형아, 나는 축복이야. 미국에 엄마, 아빠 만나러 가는데 비행기 태워줄래? 나 유기견 엄마 밑에서 태어나서 길거리에서 힘들게 살아왔어ㅠㅠ 평생 가족 만나게 도와줘.”
“유기견 로빈이의 해외입양을 부디 도와주세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하는 분을 모십니다. 어떠한 추가 비용도 발생하지 않으며, 그저 로빈이를 인천공항 및 도착지 공항에서 스태프에게 인계해주시면 됩니다.”
인스타그램에 ‘해외이동봉사’를 검색하면 3만6000여 개의 유기견 사진이 올라옵니다. 국내에서 구조됐지만 국외 입양이 결정된 견공들입니다. 입양처로 떠나려면 인솔해줄 사람과 비행기 편을 마련해야 하죠. 이때 필요한 것이 이동봉사자입니다. 유기견에게 바다 건너 견생 2막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인천에서 구조됐던 1살 백구 여우가 최근 미국으로 새 입양처를 찾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동봉사자 덕이었습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시민 김태희(30)씨는 지난 5개월간 임시보호했던 여우를 얼마 전 미국 뉴욕주의 동물보호단체로 떠나보냈습니다. 국내 입양을 보내고 싶었지만 몸무게 16㎏의 진도 믹스견을 맡겠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죠. 직접 입양도 고려했지만 이미 성견이 된 여우에게 태희씨의 9평 원룸은 너무 좁았고, 결국 태희씨는 미국 현지에서 좋은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믿을 만한 미국 동물단체에 여우를 맡기기로 했습니다.
태희씨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약 1개월 만에 여우의 해외 출국을 도울 시민 봉사자들을 모집했습니다. 여우를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시켜줄 해외이동 봉사자와 여우를 대형 캔넬(이동장)과 함께 인천국제공항까지 실어 나를 차량 운행 봉사자입니다.
출국날인 지난 3일. 여우는 오전 산책을 마친 뒤 인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태희씨와의 마지막 산책이었죠. 13시간 넘는 비행 도중 멀미를 할 우려가 있어 사료는 주지 않았습니다.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니 이동봉사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SNS에서 여우의 이동봉사자 모집 글을 접하고는 선뜻 미국에 데려다주겠다고 나선 고마운 시민이죠.
태희씨는 봉사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뒤 여우가 담긴 캔넬로 다가갔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인사인 줄도 모르고 여우는 해맑게 웃고 있었어요. 태희씨는 캔넬 앞에서 여우에게 속삭였습니다.
“이렇게 빨리 좋은 기회가 올 줄 몰랐는데…. 같이 지낸 5개월 동안 건강하고 해맑게 있어 줘서 고마웠어. 더 넓고 좋은 집에서도 사랑 받기를 멀리서 기도할게. 우리 여우는 어딜 가든 귀염 받을 거야. 넌 감동이었어. 사랑해.”
여우를 태운 캔넬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비행기 화물칸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유기견들은 한국에서의 이름을 지우고 현지에서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현지에서 보내온 영상을 보니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표정의 여우. 하지만 벌써 “Sit(앉아)”이라는 영어를 알아듣습니다. 이렇게 똑똑하니 태희씨 말처럼 어딜 가든 사랑 받을 친구입니다. 여우는 미국 이름 폭스(Fox)로 지내며 새로운 현지 가족을 기다리고 있지요.
해외로 떠나는 유기견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진도, 도사, 셰퍼드 등 체중 15㎏급 대형견이거나 부모견의 품종이 서로 다른 믹스견이 대다수입니다. 인구 80%가 이웃갈등에 취약한 아파트, 빌라 등 다세대주택에 거주하고 미디어에 노출된 품종견이 인기를 독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가평군의 개인 구조자 송은정(52)씨는 매년 200마리 넘는 유기견을 구조합니다. 은정씨가 구조한 유기견의 99%는 대형견, 믹스견이며 이 중 70%는 해외로 입양됩니다. 은정씨는 “국내 입양문의의 경우 시골 마당이나 농장의 짧은 줄에 묶어 키우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구조한 동물이 1m 줄에 묶여 생명만 부지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은정씨가 지난 4년간 해외입양 보낸 유기견은 600마리에 달합니다. 주로 캐나다 벤쿠버, 미국 워싱턴·뉴욕으로 향하며 출국에 필요한 이동봉사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20대 청년들의 참여로 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이동봉사 신청이 뚝 끊긴 상황입니다. 은정씨는 “밴쿠버로 떠날 유기견만 10마리 이상 대기 중이며 뉴욕, 워싱턴 이동봉사자도 절실하다”며 도움을 호소합니다.
경기 용인시 주민 이서연(30)씨는 수년 동안 동네를 배회하던 어미와 아들 유기견을 구조해 입양을 준비 중입니다. 최근 자견인 4개월령 축복이가 워싱턴의 군인 가정으로 입양이 확정됐지만, 이동봉사자를 찾지 못해 기약 없이 대기 중입니다.
서연씨는 “입양자는 진돗개를 입양해 15년간 돌본 경험이 있을 만큼 믿음직한 사람”이라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동봉사자를 찾기 어려울 테니 축복이가 올 날을 몇 달이든 기다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합니다.
반려동물이 국경을 통과하려면 국가마다 요구하는 까다로운 검역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국가별 검역조건’에 따르면 외국 검역을 통과하려면 일반적으로 ▲동물등록칩 이식 ▲국내 검역 기관에서 발행한 검역증명서(Health certificate) ▲입국 30일 전 광견병 예방접종이 필수입니다.
검역증명서는 공항 내 동물식물수출검역실 혹은 지역 농축산검역본부 사무소에서 동물등록·예방접종·중성화수술 등 기록을 제출한 뒤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서류는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검역기준은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지역마다 다르며 또한 같은 국가라도 주 정부마다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EU의 경우 광견병 항체 수치를 요구하므로 동물병원에서 동물 혈액검사를 미리 해둬야 합니다. 농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반려동물의 검역을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가 현지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사례들이 있다”면서 “출국 전 해당 국가, 해당 지역의 검역 정보를 미리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SNS에는 이동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한 유기견들의 소식이 가득합니다. 입출국 시 화물 서류에 간단한 서명을 하는 것만으로도 유기동물에게 제2의 견생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출국을 앞두고 있다면 SNS에 해당 국가명과 해외이동 봉사를 키워드 검색한 뒤 이동봉사에 도전해보세요.
기사에 소개된 시민 구조자들은 지금도 해외이동 봉사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기재된 인스타그램 계정에 메시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 구조자 송은정씨: 인스타그램 @gapyeong_shelter / 캐나다 밴쿠버, 미국 워싱턴 DC 및 뉴욕 출국자 모집
-개인 구조자 이서연씨: 인스타그램 @adopt_faith_blessing / 워싱턴 출국자 모집
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PD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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