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엑스 남세동 "좋은 회사 많아지면 좋은 AI 서비스도 많아져요"

최민영 2021. 9. 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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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의 혁신 탐구생활]

세이클럽, B612 등을 만들었던 개발자 출신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보이저엑스 사무실 들머리에서 미소짓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인공지능(AI)은 인류의 삶을 바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은 더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를 내놓으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7년 남세동(42) 대표가 창업한 보이저엑스도 그런 회사 중 하나다. 이 회사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스캐너 앱 ‘브이플랫’(vFlat), 자동으로 영상 자막을 달아주는 서비스 ‘브루’(vrew), 저렴한 가격에 손글씨를 폰트로 만들어주는 ‘온글잎’을 내놨다. 게임회사 크래프톤과 함께 인공지능의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남 대표는 1998년 대학생 인턴 신분으로 일하던 네오위즈에서 세이클럽 개발을 주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천재 개발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20년 동안 성공적으로 개발자 경력을 쌓았다. 사업가로 변신한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인공지능 기술, 서비스를 만들고 싶냐고 묻자 “기술과 서비스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대신 “좋은 인재와 좋은 조직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저엑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재육성”이라며 “기술이나 공부가 아니라, 좋은 사람, 좋은 조직이 많다면 그만큼 좋은 서비스도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보다 조직문화를 더 많이 고민하는 인공지능 회사’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보이저엑스 사무실에서 남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티셔츠와 반바지 등 자유로운 옷차림의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 김명진 기자

■초등학교 방과후활동으로 시작한 프로그래밍, 글로벌 5억회 다운로드 카메라 앱 B612으로 이어져

남 대표는 1988년 서울 영신초등학교 4학년 때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다. 컴퓨터반 방과후활동을 하던 친구들에게서 “텔레비전에 내 이름이 나오는 기계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였다. “키보드로 내 이름을 치면 이름이 나오고, 네모를 그리면 네모가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주사위를 굴리면 말이 움직이는 간단한 게임도 만들어 봤죠. 컴퓨터에 흥미를 느낀 덕에 수학이나 영어 등 학교 공부에도 재미를 붙였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좋은 성적 거뒀던 그는 충남과학고를 거쳐 1996년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의 꿈은 학자였다. 하지만, 카이스트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나 보이는 수많은 천재를 보면서 공부보단 일을 해보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전산학과 컴퓨터 동아리 선배였던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이 창업한 네오위즈에서 1998년 인턴으로 일하며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 시절 개발한 채팅 서비스는 ‘세이클럽’으로 발전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원래 네오위즈 주력 상품은 원클릭이라는 인터넷 종량제 접속기였어요. 하이텔, 천리안 같은 정액제 인터넷에 가입하지 않아도, 컴퓨터에 CD를 넣으면 저렴한 요금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장치죠. 네오위즈는 이 상품으로 한차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원클릭 이용자들이 인터넷에서 뭘 하나 들여다보니, 사업화할만한 아이템 중에는 채팅을 가장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원클릭 채팅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이후 좀 더 발전시켜 탄생한 서비스가 세이클럽이죠.”

세이클럽이 성공하면서 학위 취득에서 취업으로, 진로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남 대표는 말했다. 네오위즈가 그다음으로 집중했던 검색엔진 사업 ‘첫눈’도 성공했다. 첫눈은 별도 회사로 분사해서 서비스를 키워가다 2005년에 네이버에 인수됐다. 이후 2015년까지 네이버에서 일하며 전 세계에서 5억회 이상 다운로드를 기록한 카메라 앱 B612도 만들었다.

개발자로 경력을 쌓아오는 내내 연이어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어떤 기준으로 개발 아이템과 프로젝트를 정했냐고 묻자 남 대표는 “예전에도, 지금도, 만들고 싶은 서비스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원클릭 채팅은 당시 네오위즈가 워낙 바빠서 일손이 없어서 제가 개발을 맡은 것이고 첫눈도 회사 방향에 동의해서 따른 것이에요. 카메라 앱 개발도 셀피가 유행하기 시작한 흐름을 포착한 회사의 방침으로 정해진 것이었죠. 저는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들고 싶었습니다. 요리로 치면 ‘최고의 짜장면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단, 좋은 재료를 써서 적절히 간을 맞춰야 한다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어떤 음식이건 사용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내놓고 싶은 거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인공지능 기술 접목한 스캐너, 영상편집 앱 내놔…“사소해보인다? 없으면 못살 것”

보이저엑스가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는 브이플랫, 브루, 온글잎 등 3개다. 그동안 20여개 서비스를 내놓고 수정하고 철수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살아남은 서비스들이다. 브이플랫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휘어진 책도 자동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전문 스캐너가 스캔한 것 같은 피디에프(PDF) 파일을 만들어낸다. 올해 6월 기준 월 이용자수(MAU)는 100만명 정도다. 브루는 동영상의 음성을 인식해 초벌 자막을 대신 써줘서 영상편집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온글잎은 손글씨로 200글자만 쓰면 자동으로 저렴한 가격에 폰트를 만들어준다. 모두 인공지능을 활용했다. 남 대표는 세 서비스의 가능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브이플랫은 세상의 모든 스캐너를 대체하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종이를 본뜰 때 사용하는 스캐너는 물론, 3차원 스캐너까지도 포함합니다. 브루는 파워포인트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파워포인트로 만들었던 각종 발표자료를 앞으로는 영상으로 만들 것 같아요. 영상편집 수요가 폭발할 때 프리미어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집 도구가 필요할 텐데 그 자리를 브루가 노리고 있습니다. 온글잎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손글씨 폰트 시장을 테스트해보는 중입니다. 손글씨 폰트 시장이 없는 이유는 수요가 없거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지금은 한글 손글씨 폰트를 한 세트 만들려면 수천만 원이 들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 가격을 10만원까지 낮추는 게 목표입니다.”

인간을 대체할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스캐너와 자동 자막 같은 ‘사소한’ 서비스를 내놓은 이유를 묻자, 남 대표는 “전혀 사소한 서비스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으레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을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문서, 영상을 보면서 살고 있는지를 가늠해보면 결코 사소한 규모가 아니죠. 네이버에서 카메라 앱 B612를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카메라를 따로 사서 쓰기보단 스마트폰에 흡수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일이 점점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조만간 미용실에 가기 전에 사용하는 헤어스타일 예상 서비스와 회의록 정리 및 회의 진행 소프트웨어도 내놓을 예정이다. 두 서비스 역시 매일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미용 시술과 회의 규모를 고려하면 큰 규모의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남 대표는 설명했다.

보이저엑스 누리집 갈무리

■연구·개발보다 ‘자발적 조직문화’ 더 많이 고민하는 보이저엑스

남 대표는 20여년 간 개발자로 일하다가 마지막 직장이었던 네이버를 2015년 퇴사하고 2년 뒤 보이저엑스를 창업했다. 네이버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창업을 했을까. “네이버는 이미 멋진 회사이고 이보다 더 멋진 회사를 찾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네이버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자율적인 회사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거나 ‘그건 안된다’고 하는 서비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젓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사람들의 상식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스타트업이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네이버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훨씬 자율성이 보장되는 회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남 대표가 회사를 운영하며 가장 고민하는 점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일을 안 시킬까?”다. 바꿔 말하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던지고 그것을 스스로 구체화하도록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조건을 만드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성공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스타트업의 숙명이다 보니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습니다. 정부, 동료 직원, 옆 회사, 투자사로부터 ‘그게 되겠냐’는 도전을 받죠. 이를 넘어서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잘 될 거라고 믿고, 미쳐서 해야 합니다. ‘인센티브 더 줄게’라고 한두 번은 넘어갈 수 있지만, 시켜서 하는 일은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안 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어요.”

보이저엑스가 서비스를 개발할 때 고려하는 원칙은 3가지다. 사용자, 팀워크, 성장.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생각하지 않고, 서비스를 더 큰 범위에서 성장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개발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세우게 된 원칙이라고 남 대표는 말했다.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내고 싶은 만큼, 함께 일하는 동료도 존중해야죠. 최고 품질의 서비스를 만들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시키겠다는 꿈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최고의 김밥을 만들겠다는 생각과 삼각김밥을 만들어 전국의 편의점에 뿌리겠다는 생각은 보통 충돌하지만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야죠. 이렇게 사용자, 팀워크, 성장의 ‘싱크’가 동시에 맞아떨어지면 그다음 일은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배들 말은 절반만 듣고,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창업에 임해야”

남 대표가 보이저엑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회사’를 직접 만들어서 보여주고, 한국 사회에 비슷한 회사가 더 많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남 대표가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와 기술 개발에 대해 활발히 페이스북 글을 쓰는 이유도 한국 사회에 좋은 회사를 더 많이 공급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지금까지 보이저엑스는 서비스 런칭, 투자 유치, 직원 채용 등 모든 부분에서 대체로 순항하고 있지만, 2017년 4월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차례 투자 파기 사건을 겪었다. 게임회사 위메이드가 같은 해 1월 1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약속을 뒤집어 구설에 올랐다. 남 대표는 이 일을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보이저엑스의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시작하자마자 크게 깨져보면서 배운 것도 많아요. 당시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니 투자는 종종 깨지기도 하는 것이었고, 한 투자가 깨지면 다른 투자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더라고요. 큰일을 겪으면서 저와 회사의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인데도 업계에서 인플루언서처럼 목소리도 낼 수 있게 됐죠.”

이제는 사업가가 된 남 대표가 후배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1번 조언은 “선배들 말을 듣지 말라”다. “보이저엑스 직원들이 지켜야 규칙 중 ‘룰룰’이 있어요. 룰(rule)이라고 무작정 따르지 않고, 존재하는 룰도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이죠. 룰보다 중요한 게 일을 잘하는 거고, 이 원칙에 안 맞는 룰은 언제든지 폐기해도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폐기해도 되는 내용에는 제 이야기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선배들의 조언은 도움이 되지만 과거의 경험일 뿐이니 앞으로 해야 하는 새로운 일에는 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제 경험도 절반만 들어주세요. 사업을 하기 전에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도전의 크기를 따져봐야 하는 점도 중요합니다. 창업하면 돈, 경력, 친구 등 지금 가진 수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실패하고 잃는 것이 기본값인데, 돈은 얼마까지, 경력은 어디까지 잃어도 괜찮은지 한 번은 생각해보고, 자신이 생각한 범위 안에서는 다 잃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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