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선진국 됐는데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편집자주]2020년 국내총생산(GDP) 1조5868억달러,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글로벌 수출 6위·수입 9위의 무역강국.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을 수식하는 지표다. 불과 70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 차례나 이겨내며 위기에 강한 DNA를 심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지난해 글로벌 경제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도 주요 선진국보다 빠르고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며 세계의 모범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청을 받아 사실상 G8 국가로서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국제 원조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웠던 최빈국에서 ‘잘 사는 나라’를 넘어 ‘글로벌 리더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행보를 따라가봤다.
▶1부
(1) 세계가 인정한 ‘선진국’ 대한민국, G7과 어깨 나란히
(2)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글로벌 모범국 새 역사 쓴다
(3) “국가는 선진국 됐는데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2부
(1) K-반도체, 글로벌 종합반도체 1위 비전 빨라진다
(2) K-배터리, 미래차에 ‘심장’ 단다
(3) K-조선, 초격차로 ‘세계 1위’ 지킨다
▶3부
(1) 친환경 힘주는 K-자동차, 미래차시장 정조준
(2) K-바이오, 2025년 ‘세계 5대 백신 강국’ 도약한다
(3) K-게임, 중국에 뺏긴 왕좌 재탈환 나선다
(4) 철강·화학, 수익성 확대 이어 ‘친환경으로 돌파’
(5) 잘 나가는 해운업계, 초대형·친환경 공격 행보로 승부수
(6) 현대·삼엔 등 주요 건설업체 ‘91.5억달러’ 해외 입찰 참여
(7) 글로벌 장벽 허문 ‘건강·식품·뷰티’ 청신호
(8) ‘플랫폼 파워’로 차세대 K-패션 주도한다
(9) 코로나 뚫고 쾌속 질주하는 K푸드·뷰티
선진국은 동경의 대상일 뿐 한반도에선 꺼낼 수 없는 ‘유토피아’와 같았다. 한국전쟁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곧 닿을 것 같았던 그 꿈은 IMF 외환위기로 한차례 큰 좌절을 겪었다. 온 국민이 합심해 겨우 수렁에서 헤쳐나왔고 주변국들의 훼방과 시기에도 격차는 다시 빠르게 좁혀져 갔다.
2021년 드디어 동경해 왔던 그들이 한국을 같은 선진국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설립 57년 만에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여러 국가경쟁력 지표에서도 그토록 모질게 굴었던 일본을 제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의 면면도 1997년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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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직전 3년 기준으로 행복지수를 산출해왔으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이란 특수 상황을 감안, 한 해만 따로 발표했다. 2017∼2019년 3년간 집계한 한국의 행복지수 순위도 49위로 별 차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으로 상위권을 다퉈온 산업재해사망률, 멕시코(연 2137시간) 다음으로 가장 긴 근로시간(연 1967시간), 평균보다 배가량 높은 자살률 1위 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SDSN 행복지수 1위엔 핀란드가 4년 연속으로 올랐고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노르웨이,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순으로 상위 10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 한 곳 빼고 모두 유럽국가들이다. 동아시아에선 대만(19위)이 가장 높았고 일본(40위)도 한국보다 앞섰다. 미국(14위)에 대적하는 G2이지만 공산당의 사회 통제가 다시 심해지는 중국(52위)이 한국보다 두 계단 아래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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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시로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를 든다. 원격의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하겠다는 서로의 말만 앞세우니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미래 동력인 IT산업에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소프트웨어(SW) 생태계’는 관련 정책에서 매번 등장하는 단어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됐는지 알기 어렵다. 대상이 뭔지 모르겠지만 육성하겠다는 식이란 지적이다.
특히 OECD는 정부 투자를 늘려 대기업·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저소득층에게도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며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낙수효과’(Trickle Down)가 허구이며 불평등 해소가 국가 성장에 직결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빈곤탈출률과 저소득층 소득개선 효과는 조사 대상 OECD 28개국 중 최하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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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코로나19 영향분석을 의뢰받은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도 “코로나19는 한국 재정 상황을 크게 악화시키지 않았으나 이전부터 겪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인구 구조 변동을 가속했다”며 출산율에 초점을 맞췄다. 출생아 97.4%가 결혼 가정에서 태어나는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로 혼인율이 더 위축된 점도 우려를 산다. 보험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1년간 결혼 건수는 전년동기대비 14.7% 줄어들었다.
일견 새로울 게 없어 보이나 그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무작정 정부 기관이나 대기업을 내려보내고 공항만 지을 게 아니라 각 지역 특색을 갖춰 젊은 층이 자리잡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예로 든 것은 세계적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연구한 ‘게이 지수’다. 동성애자의 밀집도이며 높을수록 첨단산업이 발전했다는 결과로 주목받은 바 있다. 그들이 안주할 만큼 포용력을 갖춘 곳에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이 모여 기술이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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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앞으로 국민이 정부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나갈 수 있도록 공공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못한 일은 물론 잘한 일도 국민에게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았다. 우수한 인력이 공공부문으로 지속 유입되고 있음에도 이들의 역량을 개발·활용해갈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다. 더 넓게 바라보면 교육 환경도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알맹이인 시스템은 수십년 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통 없이 세워진 정의, 취사선택되는 공정은 약육강식·적자생존의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릴 뿐이다. 이태준 교수는 “정부 혁신으로 국민과 손잡고 글로벌 경쟁력을 함께 키워나가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다시금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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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동현 기자 dh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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