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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뻗어잠든 만취女, 차가 밟고 넘었다..과실 비율은?

장구슬 입력 2021. 09. 20. 17:00 수정 2021. 09. 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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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7일 충남 서산시 갈상동 사거리에서 도로 위에 누워 있는 여성을 승용차가 밟고 지나가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술에 취한 보행자가 도로 위에 누워 있다가 변을 당하는 일명 ‘스텔스 보행자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매년 200∼300건씩 발생하고 있으며, 한 해 목숨을 잃는 인원도 적게는 20명대에서 많게는 40명대에 이른다.

운전자는 주행 중 전방을 주시하면서 보행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스텔스 보행자는 운전자가 발견하기도, 피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로 위 시한폭탄’ 스텔스 보행자…매년 300여건 사고 발생


지난 7월15일 오후 11시16분쯤 부산 동래구의 한 주택가 골목을 지나던 운전자는 차량이 무언가를 밟고 지나온듯한 충격을 느껴 차를 세웠다. 내려 보니 도로 위에 한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주변이 어두웠던 탓에 도로에 쓰러져 있던 남성을 못 본 채 지난 것이었다. 50대 남성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약 4시간 만에 숨졌다.

지난 5월7일엔 충남 서산시 갈상동 호수공원 사거리에서 발생한 스텔스 보행자 사고 영상이 퍼지며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공개된 영상에는 술에 취해 차도에 누워 있는 여성을 발견하지 못한 승용차가 하반신을 밟고 지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50대 여성은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와 골반이 골절됐고 운전자는 치상 혐의로 입건됐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베테랑 운전자라도 여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두운 도로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데 어떻게 피하냐”며 보행자의 잘못이라는 의견과, 반대로 “운전자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는 의견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앞서 지난 4월에도 유튜브 채널 ‘한문철TV’를 통해 스텔스 보행자 사망사고 영상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영상에는 한 주택가 골목을 주행하던 운전자가 도로 우측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던 남성을 치고 가는 모습이 담겼다. 운전자는 유족과 합의를 진행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해 사건은 재판으로 넘겨졌다.

지난 3월에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 내리막길에서 운전자가 어둠 속에 술에 취해 누워 있던 60대 남성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251건이었고 관련 사망자는 27명이었다. 2017년에는 사고 345건·사망자 44명, 2018년 285건·40명, 2019년 374건·35명이었다.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오후 9시∼오전 4시 사이 어두운 도로에서 빈번하며, 지하주차장에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사고 유형은 대부분 차량 이동로에 누워 있던 취객이 변을 당하는 식이다.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뾰족한 예방책이 없는 실정이다.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주의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경찰 관계자는 “도로 위 취객 관련 사고는 빈번하다”며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발생한 스텔스 보행자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취객 보행자 범칙금 3만원에 그쳐…“객관적 과실평가 필요”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다른 교통사고보다 보행자 과실이 높게 평가되는 편이다.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분쟁심의위원회는 스텔스 보행자 사고에 대한 운전자와 보행자의 과실 비율을 6대4로 제시했다. 그러나 운전자의 예측 가능성과 상관없이 과실로 판단되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크다. 도로교통법은 교통약자인 보행자를 보호할 의무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행자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 보행자 과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운전자와 비교해 보행자가 받는 처벌 수위가 현저히 낮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지만, 보행자가 도로 위에 눕는 등의 행위는 도로교통법상 범칙금 3만원에 그친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지난 5월 MBC와 인터뷰에서 “운전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거나 회피 가능성이 없는 사고의 경우 무죄를 선고하는 판례도 있지만 입증하기 쉽지 않다”며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킨 운전자에게 억울하게 유죄가 선고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행자의 돌발 행동 여부, 현장 검증 등을 통해 보행자의 과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한문철 변호사도 “운전자 입장에서 좁거나 어두운 길에 누워 있는 보행자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보행자 과실이 분명한 경우 책임 소지를 높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구슬 기자 jang.gu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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