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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제주댁 야고, 상암동에 터잡은 사연

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2021. 09. 21. 00:01 수정 2021. 09. 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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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 가면 억새밭에서 유심히 뿌리 근처를 살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라는 식물을 찍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 억새 뿌리 쪽을 보면 담뱃대처럼 생긴 분홍색 꽃 ‘야고’가 피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하늘공원 야고.

야고는 원래 제주도, 거제 등 남해안 섬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우리나라 외에도 동남아와 일본·중국 남부 등 따뜻한 곳에서 사는 식물인데 언제부턴가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도 야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공원에 억새밭을 조성하면서 제주도에서 억새를 옮겨 심었는데, 야고도 따라와 적응한 것입니다.

야고는 열당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억새 뿌리에 달라붙어 물과 영양분을 얻어먹고 사는 기생식물입니다. 기생식물이라 엽록소가 없어서 전체가 갈색을 띱니다. 참나무 등에 달라붙어 사는 겨우살이, 바닷가 모래땅에서 사철쑥에 양분을 기대는 초종용, 여러 종류의 쑥에 기생하는 백양더부살이 등이 대표적인 기생식물입니다.

겨우살이.
기생식물 초종용.

야고는 줄기가 아주 짧아 잘 드러나지 않다가 꽃이 필 때쯤에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꽃이 피면 한 뼘 남짓 줄기가 올라오고 그 끝에 분홍색의 독특한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꽃은 원통 모양인데 손가락 두 마디쯤 길이입니다. 이 모양이 담뱃대 비슷하게 생기고 더부살이를 하는 식물이라고 ‘담배대더부살이’라는 이명도 갖고 있습니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꽃잎 안쪽을 보면, 작은 빵처럼 생긴 둥근 암술머리가 달린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서울 하늘공원 야고.

기생식물은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숙주 식물에 기대기 때문에 얌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보기가 힘들어 야생화에 관심있는 사람들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식물들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야고는 뿌리에서 자라도 좋다는 억새의 화학적 신호가 떨어져야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고가 질병처럼 침투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숙주의 배려와 아량으로 함께 살아갈 뿐”(김종원 계명대 교수 ‘한국식물생태보감2’)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는 억새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하늘공원 야고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에는 억새밭 사이를 잘 찾아야 겨우 볼 수 있었는데, 갈수록 서식지가 더 넓어지고 개체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굳이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길가에까지 나와 자라는 녀석들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댁’ 야고가 하늘공원에 완전히 터를 잡은 것 같습니다. 최근엔 광릉 국립수목원, 서울수목원 억새밭에 심은 야고도 잘 자란다고 합니다. 따뜻한 지역에서 사는 식물이 수도권에서도 잘 자라는 것은 지구 온난화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야고가 서울에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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