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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으면 막는다..'백신 여권 vs 안 맞을 자유' 갈린 세상

이유정 입력 2021. 09. 21. 05:00 수정 2021. 09. 2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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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서부 토리노에서 이달 11일(현지시간)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정부의 '그린 패스 제도' 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은 전면적 또는 부분적 백신 접종 의무화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 “백신을 안 맞을 자유”를 주장하는 시민들도 만만치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백신 음모론 등을 제기하는 이들부터, 조직적인 시위와 법적 대응에 나선 이들도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새로이 등장한 글로벌 백신 갈등을 조명했다.


"백신 강제는 차별" 美연방정부 상대 소송


미국 공화당의 텃밭인 애리조나주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코로나 백신 의무 접종 정책을 무효화해달라는 연방 소송을 제기했다. 주 정부 차원에서 연방 정부의 백신 정책에 반기를 든 첫번째 사례다. 애리조나주 마크 브로노비치 법무부 장관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백신 의무 접종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미국 시민들만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조항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이달 9일 연방 공무원과 100인 이상 기업 근로자, 의료 종사자들에게 백신 접종 여부를 노동부가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규정을 어긴 기업에 대해선 근로자 1인당 수천 달러의 벌금을 물리도록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 정책 가운데 가장 강제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백신 의무 접종 정책에 맞서 주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소송을 낸 애리조나주의 마크 브로노비치 주법무부 장관. [AP=연합뉴스]

각국은 속속 백신 의무 접종을 도입하는 추세에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봉쇄(lock down) 정책보다, 공격적인 백신 접종으로 일상 회복을 해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백신 접종을 정부가 강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백신 여권' 제도가 있다. 특정 장소 출입시에 백신을 두 차례 완료했거나, 코로나19로부터 완치됐다는 증명서를 제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BBC 방송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내달 15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그린 패스’ 제도를 모든 자영업자와 근로자로 확대하기로 했다. 유효한 패스 없이 일하는 근로자가 적발되면 기업과 직원은 1500유로(약 207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탈리아는 이미 8월부터 기차역과 영화관 등 공공장소에서 그린패스를 요구해 왔지만, 이번 조치로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이 같은 의무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는 지난달부터 이탈리아의 도시별로 꾸준히 열리고 있지만, 정부는 확대 시행을 밀어 붙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덴마크ㆍ키프로스 등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선 반대 시위, 영국은 철회


글로벌 데이터 집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영국 임페리얼칼리지대가 각국의 백신 접종 태도를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올해 8월 15일 기준 “백신을 맞지 않았으며, 향후 백신을 맞을 생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미국(24.4%), 독일(24.1%), 프랑스(23.3%), 영국(21.5%) 순으로 높았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국가들 위주로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나라별로 정부의 백신 정책을 이를 공중보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느냐, 정부에 의한 개인의 과도한 통제로 여기느냐에 대한 시각 차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이 집계에서 12.5%가 백신을 맞을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결정하지 못 했다”(17.0%)는 유동층 응답이 많았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부정적인 인구.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프랑스는 지난 달 9일부터 레스토랑ㆍ비행기ㆍ기차 등 대중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백신 여권(passe sanitaire)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이를 시행하기까지 격렬한 반대 시위에 직면했다. 7월 중순부터 3주간 전국적으로 수십 만명이 운집해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자유!”를 외치며 백신 접종을 정부가 강제하는 조치를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도 잉글랜드 지역의 클럽이나 붐비는 대중시설에서 백신 여권을 도입하려다 ‘유턴’했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이 지난 12일 BBC 방송에 출연해 직접 “이달 말 도입 예정이었던 계획이 가을이나 겨울 필요한 때 도입할 ‘예비’ 상태로 두겠다”고 밝혔다.


“공중보건 위해 불가피” VS “의학적 사유로 차별”


프랑스 파리에서 7월 31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백신 여권 도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AFP=연합뉴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는 이 같은 증명 제도가 “밤늦게 영업을 허용하기 위한 최선책”이라는 입장이었지만, “불필요하고 가혹한 정책”이라는 나이트클럽 업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정책을 철회했다. 야당은 물론 보수당 내부에서도 과도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백신을 도입했던 영국은 16일 기준으로 16세 이상 인구의 89%가 한 차례 이상 백신 접종을 마쳤다.

한쪽에선 백신 여권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이들을 차별 대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호주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정부의 백신 여권 검토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위는 “장애 등 의학적인 이유로 백신을 접종하지 못 하는 사람, 신념이나 정치적 견해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우려된다”고 했다. 호주 정부는 미국과 한국 등 특정 지역 해외 여행자에 한해 백신 여권을 운영하기로 했다.

중국ㆍ사우디아라비아 등도 강력한 백신 증명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저항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서구 매체들은 “권위주의 국가일 수록 반발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QR코드 패스에 이어 마스크를 낀 얼굴에 대한 안면인식 장치까지 동원해 ‘빅 브라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코로나19 사태를 이용해 시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반감을 타고 극우 세력이 몸집을 불리기도 한다. 20일 실시된 캐나다의 연방 조기 총선에서 노골적으로 백신 음모론을 제기한 극우당 캐나다인민당이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위험이 과장됐고, 백신 접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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