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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왜 지내나요" "제사 안 물려줍니다"..명절 문화가 바뀐다

김태영 기자 입력 2021. 09. 21. 10:00 수정 2021. 09. 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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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이미지. /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코로나19 속에서 치르는 명절이 2년째 지속되면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등 가족 모임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 이번 계기에 차례를 없애는 가정들도 생기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제사와 차례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명절 문화의 도래가 앞당겨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석 연휴에 1박 이상의 고향 방문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16%와 19%로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한국갤럽 제공
‘올 추석 1박 이상 귀성’ 19%···"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 안 모여 차례 간단히"

한국갤럽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추석 연휴에 1박 이상의 고향 방문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응답자 중 19%로 집계됐다. 갤럽에 따르면 추석맞이 1박 이상 귀향 계획 응답은 1989년 이후 매번 30%를 넘었고 지난 2016년에도 39%에 달했지만 올해와 지난해(16%)는 크게 감소했다. ‘따로 사는 가족과 친척을 만날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도 47%로 2016년(80%)에 비해 33%포인트나 줄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가족·친척 모임이 줄어들었음은 물론, 모임을 갖는 이들조차도 방문 일수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명절이면 과중한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 사이에선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체감하는 목소리가 높다. 맏며느리 전업주부 박 모(59)씨는 “원래는 명절마다 제사상을 차리고 친척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작년 추석에 3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자식들하고만 차례를 지냈다”고 말했다. 박씨는 “시어머니가 코로나 감염을 많이 걱정하셔서 올해도 각자 집에서 명절을 쇠기로 했다”며 “어색하긴 해도 차례상이 간소해지니 편하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엄 모(34)씨도 “남편 쪽이 대가족이라 명절이면 녹두전을 100장은 부쳐서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난해 추석부터는 시댁에 가더라도 얼굴만 비추고 바로 집에 오고 있다”며 “명절 음식 준비로 시간과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코로나의 유일한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이미지투데이
차례 없애는 집안도 속속···"가족 형태 바뀌고 코로나19 겹쳐 명절 문화 변화 빨라질 것"

일시적으로 제사를 축소하는 것에서 나아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차례를 없애는 가정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부들이 이용하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어머니가 이번 추석부터 차례를 지내지 말자고 했다. 코로나 덕을 봤다” “유독 가부장적인 시댁인데 코로나가 영향을 준 것 같다. 며느리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는 내용의 글들이 다수 게재됐다. 박씨 역시 “나야 돌아가신 시아버지에 대한 정이 있어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제사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아들이 결혼하더라도 제사는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차례 축소·폐지 등의 새로운 명절 문화를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종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주된 가족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또 1인 가구로 변화하면서 최근 20년 사이에 젊은 이들을 중심으로 ‘제사를 없애도 괜찮다’는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졌다”며 “이런 와중에 많은 국민이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 명절’을 처음으로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세대 변화로 인해 제사 문화는 원래부터 점진적으로 바뀌는 추세였는데 코로나가 벌써 2년째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데 일정한 효과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지난해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대 53%, 20대 63.5%, 30대 54.9%로 'MZ 세대'의 동의율이 50%를 상회했다.

‘명절 싫은 이유’로 가사 노동 꼽은 여성 줄고 있지만···"남·녀가 노동 분담해야"

그럼에도 가사 노동이 여성에게 쏠린 현상은 여전한 만큼 성차별적인 명절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명절이 싫은 이유’로 가사 노동을 꼽은 여성은 지난 2001년 49%에서 올해 18%로 줄어들고 있지만, 남성의 응답 비율이 매년 3~4%인 것에 비하면 현저히 높다. 박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 명절을 지내든 간에 여성과 남성이 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설날과 추석이 부부의 가사 노동 분담을 위한 배움의 장이 된다면 명절과 관련된 가정 갈등도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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