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미화한 "다이쇼 로망"..'귀멸의 칼날'→요아소비, 불매와 소비 사이

류지윤 2021. 9. 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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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소비 '다이쇼 로망' 불매 움직임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 논란에도 흥행 성공

'다이쇼 로망'은 일본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를 그리워하는 사조를 의미한다. 다이쇼 시대는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다. 일본인들은 다이쇼 시대를 일본 역사의 문화와 경제가 풍족했던 시대라고 여기며 이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들을 다이쇼 로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이쇼 시대에 일본은 국권침탈을 발판 삼아 제국주의로 세계에 영향권을 다지려 했던 시기다. 주변 국가를 수탈하고 착취한 결과로 '다이쇼 시대'이란 황금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다이쇼 시대를 '로망'이라 부르며 미화하는 콘텐츠에 대한 반감은 클 수밖에 없다.


'다이쇼 로망' 논란은 게임, 문화, 만화, 노래 등 일본 콘텐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5일 일본의 대세 2인조 밴드 요아소비는 신곡 '다이쇼 로망'을 발표했다.


'다이쇼 로망'은 다이쇼 시대의 1923년 여학생 치요코와 2023년 남학생 토키토가 100년의 시간을 초월해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다가 사랑에 빠지는 웹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토키오가 100년 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치요코에게 편지를 통해 알려줌과 동시에 연락이 끊어지는 일이 가사의 중점이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관동 지역에 발생한 7.9급의 초강력 지진이다. 당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라는 등의 근거도 없는 낭설이 경찰 조직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확대되면서 자경단이나 경찰관에 의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도 학살당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100년의 시대를 초월한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을 애절하게 그리고 싶은 의도겠지만,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비극적인 역사를 로맨스의 주축으로 사용한 것에 한국 팬들은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요아소비는 2019년 데뷔해 싱글 '밤을 달리다'가 4억 회 이상 재생되고, 올해 빌보드 재팬 상반기 결산에소 톱 아티스트 차트 1위를 차지한 대세 밴드다. 영향력을 가진 밴드의 안일한 창작 인식에 실망이라는 반응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다이쇼 로망'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지만 외국 국가에서는 '로맨스'로 공개한 것이 곡의 의도를 흐리고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보 없이 재생했다가 가사를 듣고 불쾌해졌다는 네티즌도 존재했다.


앞서 지난 1월 개봉한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도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가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귀멸의 칼날'은 시대적 배경이 다이쇼 시대지만 2차 세계대전의 잔상까지 혼재돼 있었다. 식인귀 오니를 잡는 조직으로 10대 소년, 소녀들로 이뤄진 집단인 귀살대는 세계 2차 대전의 학도병들을 떠올리게 했고, 오니를 죽이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은 가미카제를 연상케 했다는 지적이다.


'귀멸의 칼날' 측은 개봉 당시 국내 정서를 고려해 개봉 전 언론배급시사회를 진행하지 않았고 한국 탄지로의 귀걸이는 '귀멸의 칼날'은 국내 상영 극장판에서는 이를 삭제했다. 한국 넷플릭스도 이 같은 부분이 수정해 공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멸의 칼날'은 200만 관객을 동원해 국내에서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흥행작이 됐다. 이에 후속작 '귀멸의 칼날: 남매의 연'이 10월 개봉되며 '나타구모산 편', '주합회의·나비저택 편'도 연이어 국내에서 공개된다.


소비자 측은 다이쇼 낭만을 표현한 콘텐츠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4', '프리티, 올 프렌즈' 등 계속해서 다이쇼 시대를 포장하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귀멸의 칼날'이 입방아에 올랐지만 흥행에 성공한 것도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다는 것을 증명한다.


일본의 역사의 페이지인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를 고증한 콘텐츠를 막을 순 없다. 표현에 따라 좋은 좋은 배경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로망'이나 '낭만'이라는 말로 미화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경각심 없이 소비하는 사람들 보다, 반성해야 할 시절을 아름답고 찬란했던 과거로 묘사하는 창작자들의 역사 인식이 더욱 위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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