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카센터 3만개가 문을 닫는 날

이진석 경제부장 2021. 9. 23.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엔진·변속기 없는 전기차 시대
엔진오일 교환할 일도 없어져
산업구조 전환 없으면 대량 실업
다음 대통령은 일자리 만들어야
2021 수소모빌리티쇼 개막 이틀째인 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전시장 한 회사 부스에 수소 전기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뉴시스

얼마 전 퇴근길에 탄 택시가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전기차였다. 충전에 반나절이 걸리던 전기차가 요즘은 급속 충전도 되고, 한 번 충전하면 400㎞ 이상 간다고 했다. 꽤 자랑하던 기사님은 불쑥 “그런데 걱정”이라고 했다. “휘발유차⋅경유차는 부품이 3만개가 넘는데 전기차는 엔진⋅변속기 다 없어 부품이 줄어요. 자동차회사나 부품 업체 다니는 사람들이 대량 해고 사태를 겪을 게 뻔해요”라고 했다. 기사님은 더 걱정스러운 일도 있다고 했다. “동네마다 있는 카센터들은 어쩝니까? 엔진 오일 교체할 일도 없을 텐데요.” 전국에 카센터가 3만개가 넘는다. 가게마다 3명 정도 일하고 있다고 치면 10만명 가까운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차세대 기술 선점, 친환경, 탄소 중립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전기차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 개발 총력전에 나섰고, 정부마다 보조금 쏟아붓기 바쁘다. 현대차그룹도 당장 4년 뒤 2025년부터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신차 출시를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만 하겠다고 발표했다. 2030년부터는 휘발유·디젤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닥치는데 지금 국내 자동차회사에 부품 등을 납품하는 협력 업체 9000여 개 중에 전기차⋅수소차 부품 생산 기업은 200개 정도라고 한다. 전기차의 미래를 얘기하면서 일자리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무슨 대책이 있나.

지난달 만난 첨단 소재 기업 대표는 “고졸 생산직은 최대한 안 뽑으려고 한다”고 했다. “결국 내보내야 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AI(인공지능)와 로봇이 생산 라인을 채워가고 있다고 했다. “오래 숙련된 직원들의 감(感)에 의지해서 라인을 돌렸는데 이제는 AI가 ‘이대로면 잠시 뒤에 어떤 공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고 알려주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사람 1명 줄이는 데 1억원 넘게 들어 미뤘는데 지금은 2억원이 든다고 해도 자동화 설비로 교체한다”고 했다. 회사에는 12개의 라인이 있고, 16명씩 배치돼 있어 200명 남짓 일하고 있는데 몇 년 뒤에는 라인별로 3~4명만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뱅크 직원 숫자는 1000명이 안 되는데 시중은행은 1만5000명쯤 된다. 앱으로 대출받고, 펀드 가입하는 데 은행원 자리는 온전할까.

전기차든, AI든,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든 미래의 변화는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일자리가 더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구직자들이 갖춘 능력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하던 대로 일하려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개발자가 아닌 근로자들은 밀려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추석날 둥근 달을 보고 “취업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사람들이 300만명은 넘을 것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60만명 이상을 ‘구직 단념자’라고 표현하지만, 그럴 리 없다. 번듯한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단념할 리가 없다. 정부는 세금 일자리, 알바 일자리 임시방편을 고용 대책으로 대접해 달라고 한다. 주당 17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기 근로자가 늘어나지만, 취업자 숫자만 늘면 그만이다. 일자리를 구하려 취업을 준비 중인 사람이 87만명인데 10명 중 7명 정도가 20대다.

코앞의 고용 문제도 해결하기 버거운 정부에 5년 뒤, 10년 뒤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닥칠 일이고, 먼 미래도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조차 대선 후보들이 등장하는 정치의 계절이다. 다음 대통령은 일자리를 만들 사람이어야 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세금 나눠준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