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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대응, 고노는 애매하고 기시다는 불안하다

김소연 입력 2021. 09. 23. 05:06 수정 2021. 09. 2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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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00번째 총리' 누가 되나
일 자민당 29일 총재 선거
'아베 노선' 계승 여부 핵심 쟁점
고노 '단절'·기시다 '유지' 2파전 예상
최악의 한-일 관계 분기점 맞을까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온 후보들. 왼쪽부터 고노 다로(58) 행정개혁상, 기시다 후미오(64) 전 당 정무조사회장, 다카이치 사나에(60)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61) 당 간사장 대행 모습이다. 도쿄/AFP 연합뉴스

지난 19일 낮 일본 대표적 번화가인 도쿄 시부야역. 30대 초반 직장인 무라카미 유카는 사실상 차기 총리를 뽑는 자리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대해 묻자 “다음 총리는 고노씨(고노 다로 행정개혁상)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내가 직접 투표를 하는 선거는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공약은 잘 모른다”면서도 “백신 담당 (장관)이라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주 봤다.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힘이 느껴져, 조금이라도 정치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자민당원과 당우, 그리고 자민당 국회의원들에게 투표권이 있다.

긴급사태 선포 기간이었지만 시부야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시부야의 명소 스크램블 교차로와 패션몰 주변엔 대규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사실상 일본의 ‘100번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이달 29일 예정돼 있지만 도심 어디에서도 선거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코로나로 거리 유세가 막힌데다 ‘자민당 선거’라는 특수성 때문에 포스터조차 보기 힘들다. 후보들은 코로나 시대에 맞춰 티브이(TV) 토론회, 기자회견, 온라인 등 비대면 방식을 중심으로 치열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이번 선거에는 고노 다로(58) 행정개혁상, 기시다 후미오(64) 전 당 정무조사회장, 다카이치 사나에(60)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61) 당 간사장 대행 4명이 출마했다. 고노와 기시다의 2파전이 예상된다. 누가 총리가 되는지는 일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이웃인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9년 동안 일본사회 지배한 ‘아베 노선’의 운명

‘아베 노선’은 이번 선거에서 핵심 쟁점이다.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로 기록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2년 말 두번째로 집권해 지난해 9월까지 무려 7년8개월간 집권했다. 1년으로 단명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출범 초부터 “아베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노선’은 9년 동안 일본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고노는 아베 노선과 단절하겠다는 행보를 보인다. 그는 지난 19일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나와 아베 전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 “기업의 이익은 매우 커졌지만 개인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 아베 전 총리가 퇴임 직전 이례적으로 담화까지 발표해 필요성을 강조한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론’에 대해서도 ‘과거의 개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적기지 공격론은 쇼와 시대(1926~1989)의 개념”이라며 “지금 논의해야 할 것은 일·미 동맹을 통해 어떻게 억지력을 높여가느냐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등 고노를 지지하는 일명 ‘필승을 기약하는 모임’은 지난 16일 설립 총회를 열어 “자민당을 바꾸자”며 개혁을 선언했다. 자민당 관계자는 주간지 <아에라>(AERA)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들이 말하는 당 개혁은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당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아베 지배’로부터 탈피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8%가 차기 총리는 ‘아베 노선을 계승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기시다는 반 발짝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아베노믹스에 대해 “기조는 유지하면서 조금 보완해 분배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적기지 공격 능력도 “이를 포함해 억지력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기시다는 아베 노선을 큰 틀에선 계승하는 가운데 부분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는 아베 노선을 계승할 것이라고 여러차례 밝혔다. 노다는 아베와의 선 긋기를 하고 있다. 특히 모리토모학원, 벚꽃을 보는 모임 등 아베 전 총리가 직접 연루된 대표적 부정부패 의혹 사건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가장 강경하다. 반면 나머지 3명의 후보는 재조사에 부정적이다.

코로나19 긴급사태 선포 기간인데도 스크램블 교차로 등 도쿄 시부야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일본의 ‘100대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이달 29일 예정돼 있지만 도심 어디에서도 선거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고노, 한-일 관계 역사문제와 수출규제 분리 시사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이 계속된다는 평가가 있는 한-일 관계는 고노가 당선될 경우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18일 일본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한 질문은 외무상, 방위상 등을 지낸 고노와 기시다에게 집중됐다. 고노는 이 자리에서 한-일 관계의 두가지 핵심 현안인 역사 문제와 대한국 수출규제를 분리할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무역에 대해 일·한 양국의 확실한 논의를 통해 필요한 일은 하지만,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한국 쪽) 상황이 해소됐다면 규제 대책도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부터, 한국부터라는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무역 문제는 서로 다가가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한국이 해법을 먼저 가져올 것을 요구하며 수출규제와 연동시켜왔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추진했을 때 쟁점 중 하나가 수출규제였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해 꽉 막혀 있던 한-일 관계 개선의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었지만 일본 쪽의 반응이 냉랭했다. 결국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못했다.

앞서 2019년 7~8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3대 품목 규제 그리고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 배제라는 ‘대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공식적으로는 역사 문제 때문이 아니라 수출품이 북한으로 유출될 우려 등 안보상 이유라고 일본 정부는 주장해왔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입품 관리 등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했지만, 일본은 수출규제를 풀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일본 총리의 결단만 남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일본도 오는 11월 중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는 등 굵직한 정치 일정 탓에 수출규제 문제가 당장 해결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물론 고노도 역사 문제에서는 강경하다. 18일 토론회에서 그는 역사 문제에 대해 “한국 쪽이 사법 판단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에 반하는 것으로 한국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게 하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고노는 외무상이었던 지난 2019년 강제동원 배상 판결 관련 문제로 남관표 당시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에 초치해, 남 대사의 발언을 중간에 끊고 들어가서 “극히 무례하다”고 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외무상으로 일본 쪽 당사자였던 기시다는 “(일본군 ‘위안부’ 등) 국제적 합의, 조약, 나아가서는 국제법 등 한국이 이런 것을 지키는지 여부가 의문시되고 있다”며 “이마저도 지키지 않으면 무엇을 약속하더라도 미래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화는 필요하지만 공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수출규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일본 도쿄 나가타초(한국의 여의도와 비슷한 장소) 자민당 당사에 붙어 있는 총재 후보들 사진. 도쿄/김소연 특파원

1차 과반수 득표 어려워 결선 가능성

여론만 봤을 때 고노의 인기가 두드러지지만,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소속 국회의원(382명)과, 같은 수의 당원·당우 표를 합산해 총 764표 중 과반(383표 이상)을 얻는 후보가 당선된다. 만약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면 상위 1·2위를 놓고 국회의원(382명)과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구당이 각 1표씩 행사하는 결선투표(총 429표)로 승부가 가려진다. 1차에선 여론이, 결선투표에선 국회의원 표가 중요한 셈이다.

전국 110만4336명의 의견이 반영되는 당원·당우 투표에선 고노 후보가 상당히 유리하다. <교도통신>이 지난 17~18일 자민당 당원·당우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응답자 1028명)를 보면, 차기 총재로 고노를 꼽은 사람이 48.6%에 이르렀다. 2위인 기시다(18.5%)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다카이치 후보는 15.7%, 노다 후보는 3.3%에 머물렀다.

국회의원 표심은 혼전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자민당 의원 379명을 상대로 지지 동향을 파악해보니, 기시다가 25%(97명)로 가장 높았고, 고노가 22%(83명)로 뒤를 이었다. 다카이치가 19%(71명)로 바짝 붙어 있고, 노다는 4%(16명)로 조사됐다. 이 신문은 “1차에서 아무도 과반을 얻지 못해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결선까지 가면 당원 표가 확 줄어드는데다,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다카이치를 지지하던 표가 기시다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고노가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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