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겨레

[아침햇발] 자영업자 잇단 사망은 '사회적 타살'이다 / 박현

박현 입력 2021. 09. 23. 15:46 수정 2021. 09. 23. 19:26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아침햇발]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 마련된 자영업자 간이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현|논설위원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근처 길바닥에 마련된 ‘자영업자 간이 분향소’의 제단엔 이런 글귀가 적힌 액자가 검은 띠를 두른 채 놓여 있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컵에 향이 몇개 올려져 있었고, 종이컵에는 향초가 타오르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었다.

“서울 마포 맥줏집 주인과 평택 노래방 주인의 부고를 접하고서 이러다간 자영업자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영업자 1000명 정도가 모인 단톡방에서 이렇게 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모여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넋을 위로해드리고 싶었는데 가시는 길마저도 초라합니다.” 상복을 입은 이창호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향을 피워 올리면서 과연 지난 1년 8개월 동안 소상공인들에게 국가가 무엇을 해주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피해를 이 정도로나마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소상공인들의 희생과 협조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재난지원금을 몇차례 지급했지만 이들이겐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이창호 대표는 “정부는 이번에도 두텁고 넓게 지원해준다고 말을 하는데 솔직히 한달치 임대료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실이 이러하지만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관료들의 인식은 많이 다르다. ‘재정 적자 20조원 축소로 건전 재정 회복 기반 마련’, ‘재정의 선순환 구조가 가시화되는 모습으로, 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확장 재정을 통한 조기 경제 회복, 세수 증대 등 선순환이 시현된 것과 유사한 상황.’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말 내놓은 내년 예산안 보도자료의 한 대목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켜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찬 이 자료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나라는 이미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소상공인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죽어나가고 있는 판에 관료들은 재정 건전성을 자랑하고 있는 모양새다.

재정 여력이 모두 소진돼 지원을 해주고 싶어도 못하는 것과 재정 여력이 있는데도 재정을 아끼느라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상황은 기재부가 홍보하고 있는 것처럼 후자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국가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는 영국·이탈리아·캐나다 등의 신용등급이 한단계씩 내려가고, 미국·일본·프랑스·호주 등은 전망이 하향조정된 것과 대비된다. 우리나라가 재정 운용을 잘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선진국이 바보라서 이런 게 아니다. 나중에 세금으로 환수하더라도 국민들이 어려울 땐 재정을 충분히 풀어 지원하는 재정 운용의 기본을 실천한 데 따른 결과라고 봐야 한다. 재정 건전성 수호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리 정부에는 돈을 더 써도 된다고 하는데, 관료들이 이러는 건 ‘재정 건전성 강박증’에 걸려있는 탓이다.

소상공인연합회 차남수 정책홍보본부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소상공인들이 모아둔 돈을 쓰거나 대출을 끌어다 쓰며 어떻게든 버텼는데 영업 제한이 장기화하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있다”며 “세상을 등지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의 잇단 사망은 ‘사회적 타살’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이라도 재정 관료들이 현실로 돌아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손실보상을 받는 소상공인들의 범위를 넓히고 임대료를 지원해야 한다. 우려했던 것처럼 정부는 ‘소상공인 손실보상법 시행령’에서 보상 대상을 집합금지·영업제한 조처를 받은 경우로 국한했다. 사적 모임 인원 제한 등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많은 소상공인들이 제외된 것이다. 임대료도 캐나다 등처럼 매출 감소율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도 버티기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는 폐업과 전직을 유도해야 한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매장 원상 복구에 대략 1천만원이 소요되나 정부 지원금은 200만원뿐이고, 대출금도 일시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말로만 자영업자를 ‘두텁고 넓게’ 지원한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hyun21@hani.co.kr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