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해도 전기요금 인상 없다" 약속 어긴 文정부..탄소중립 비용, 국민에 전가하나

세종=최효정 기자 입력 2021. 9. 23. 17:10 수정 2021. 9. 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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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4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8년 만의 첫 인상
당정, 지난 2017년엔 "탈원전해도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 없어"
탈원전·탄소중립 병행..전기요금 폭등 부를 것

“문재인 정부 임기 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

지난 2017년 7월 31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탈(脫)원전 정책에 대한 지적이 거세지자 이 같이 단언했다. 발전 비용이 더 높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뒤 적어도 문재인 정부 임기 내인 2022년까지는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전력과 함께 다음달 1일부터 적용될 올해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던 4년 전의 다짐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이는 일정 부분 예견된 사태였는데, 올해부터 연료비가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된 데다 원전 가동 중단 등으로 인한 막대한 비용도 고스란히 전기요금에 전가됐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현 정권의 이 같은 ‘거짓말’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탈원전과 탄소중립을 병행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비용과 효율 양 측면에서 상충될 수밖에 없다. 가장 값싼 원전 에너지를 줄이면서 발전 비용이 비싸고, 생산량도 적은 신재생 에너지만 늘려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는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말에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비용이 국민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 없다던 文 정부의 ‘뻔뻔한 거짓말’

정부와 한전은 23일 4분기(10~12월)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3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월평균 350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전기요금은 매달 최대 1050원 오른다. 전기료 인상에 따라 다른 공공요금을 비롯해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정부와 여당은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분명히 말하는데 탈원전을 해도 전력수급에 전혀 문제 없고 전기요금 폭탄도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 임기인) 2022년까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문 대통령을 의식한 듯, 2017년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함께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결국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이들의 ‘낙관론’은 당시 발표된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했으나 탈원전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전기 사용량을 계산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는 지난해 산업부와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를 올해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미 예견됐던 결과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를 생산할 때 주된 연료로 쓰이는 석유·가스·석탄 가격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것이 골자로, 비용이 오르면 전기요금도 인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정부는 국제 유가 상승과 탄소중립 등을 이유로 오는 4분기 결국 2013년 11월 이후 약 8년 만의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했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발표된 23일 오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있다./연합뉴스

◇전기요금 인상 이번이 끝일까…“막대한 청구서 올 것”

문제는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도미노처럼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따라 국제 유가 상승 등의 요인이 전기요금에 즉각 반영되는 데다 탈원전에 따른 전력수급 공백을 값비싼 신재생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설비로 채우며 전력 생산 비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예상과 달리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기준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배럴 당 70달러 이상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천연가스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연말로 갈수록 한국전력 등의 전기 생산 비용을 더욱 상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4분기에 이어 내년 1분기에도 추가적인 전기요금 인상이 단행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정부는 이 같은 비용 상승을 의식해 올해부터 전기요금에서 별도로 분리 고지되는 ‘기후환경요금’을 신설하기도 했다. 아예 신재생 에너지 확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을 ‘기후환경요금’이라는 명칭을 붙여 별도 요금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탈원전과 탄소중립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결국 국민이 분담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3분기 국제유가 상승에도 물가불안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불허했던 기획재정부는 이번에는 ‘탄소중립 비용’ 등을 내세워 요금 인상을 인가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탄소중립 2050′으로 인한 비용 상승 등을 고려할 때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탄소중립發 인플레 유발되나

이런 이유로 향후 탄소중립 이행이 전기요금 인상 근거로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탄소중립과 탈원전을 병행하는 것도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전문가 등이 원전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건의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닫은 상태다. 2050년까지 실질 탄소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탄 발전을 대폭 줄여야하고 이에 따른 전력 공백을 메꿀 가장 싸고 효율적인 에너지는 원전이다. 하지만 정부는 생산이 불안정하고 비용도 높은 신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고집이 결국 국민에 막대한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향후 물가 불안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발전 비용 상승을 요금에 전가하는 정책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탄소중립 이행’이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기재부 관계자는 “전기가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가중치를 감안하면 올해 물가 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은 0.0075%P(포인트) 정도”라면서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으로 국민 부담이 높아지지 않게 분기별 인상폭을 제한할 방침이기 때문에 물가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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