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소설을 쓴 것은 누구인가

한겨레 입력 2021. 9. 23. 17:16 수정 2021. 9. 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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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사토 사토시 교수의 말이다. “컴퓨터가 일한 부분이 10~20% 정도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100% 컴퓨터가 썼다고 말해도 상관은 없다. 또 그 프로그램은 전부 인간이 만든 것이니 컴퓨터가 아니라 전부 인간이 쓴 소설이라고 해도 그 표현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 동안 문장을 쓰는 프로그램은 크게 발전했지만 인공지능을 창작의 주체로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전치형|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지난 8월 말 ‘인공지능(AI) 소설가’가 <지금부터의 세계>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했다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다. 출판 관련 기자간담회에 대한 보도를 보면 기자들은 과연 이 작품을 인공지능이 쓴 것인지 반신반의하는 것 같다. 구체적인 집필 과정이나 인공지능 기술의 실체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겨레> 문학 담당 최재봉 기자는 작품을 평가하는 대신 인간 ‘소설감독’과 출판사의 말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소설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웬만한 작가들의 소설 문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는 정도의 평을 덧붙였을 뿐이다.

궁금한 마음에 책을 사서 살펴보았다. 표지에는 ‘AI 소설가 비람풍’과 ‘소설감독 김태연’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책 날개에는 비람풍이 ‘글쓴이’로, 김태연이 ‘소설감독’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독자를 위한 ‘일러두기’도 “이 책은 소설감독 김태연의 구상에 따라 AI 작가인 비람풍이 집필을 담당했다”며 인공지능이 소설을 썼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다만 소설감독이 일부를 직접 썼고 제목도 정했다는 점을 독자에게 솔직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발간일 등 책 정보를 표시하는 판권 면에는 ‘지은이’로 김태연의 이름만 올라 있다. 비람풍이 글쓴이인 것은 맞지만 지은이는 아닌 애매한 상황이다.

과연 인공지능이 소설을 쓴 것인지 그 문학적 가치는 어떤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인공지능을 소설의 저자로 세우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잘 알 수 있었다. 지은이 김태연은 ‘감독의 말’과 ‘감독 후기’를 통해 인공지능 소설가의 위상을 확립해주려 노력한다. 그는 “‘비람풍’이 차린 밥상에 수저만 얹었다”며 자신을 낮춘다. 그러면서도 “소설의 서사 구조는 당연하고 주제, 인물과 성격, 시점, 소재 같은 소설 전반”은 자신이 구상한 것이라며 인공지능은 인간이 짜놓은 틀 안에서 작동했다고 말한다. 책 뒤쪽 날개에 들어간 설명에서도 비슷한 고충이 느껴진다. 편집자는 비람풍이 “어지간한 작가 수준을 넘어서는 ‘필력’을 갖추었다”고 선언하면서도 “AI 소설가의 능력은 오직 감독의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이때 숟가락을 얹는 쪽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일 것이다. 소설을 쓴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쯤에서 나는 5년 전 이 지면에서 인용했던 ‘소설 쓰는 알파고’ 얘기를 떠올린다. 알파고의 충격이 남아 있던 2016년 여름, 일본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 예심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문학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말들이 많았지만,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사토 사토시 교수의 말이다. “컴퓨터가 일한 부분이 10~20% 정도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100% 컴퓨터가 썼다고 말해도 상관은 없다. 또 그 프로그램은 전부 인간이 만든 것이니 컴퓨터가 아니라 전부 인간이 쓴 소설이라고 해도 그 표현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 동안 문장을 쓰는 프로그램은 크게 발전했지만 인공지능을 창작의 주체로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여전히 창작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인공지능 소설가’처럼 멋있는 말이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인공지능 예술을 대하는 보다 현실적인 관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주행 박사의 ‘코드로 그린 그림’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스를 전공한 그는 알고리즘을 통해 기존 회화나 직접 찍은 사진을 픽셀 단위로 다시 배치하고 조합함으로써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창조한다. 컴퓨터 코드를 통해 패턴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작품을 그는 절대로 ‘코드가 그린 그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코드를 도구로 삼아 인간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코드로 그린 그림’에는 ‘인공지능 화가’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 그림에 대한 찬사와 비판 모두 코드를 짠 공학자 겸 예술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예술 창작에 인공지능이 쓰인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곧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과 ‘인공지능으로 쓴 소설’을 구분하는 것은 작품의 미학적 수준보다는 작품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의지의 차이다.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한다고 말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괜찮겠지만, 누군가는 이름을 걸고 인공지능의 작업 결과를 설명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들어가는 모든 영역에서 그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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