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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피리 부는 사람들

한겨레 입력 2021. 09. 23. 17:16 수정 2021. 09. 2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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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안희경|재미 저널리스트

날마다 파랗던 캘리포니아의 하늘이 돌아왔다. 사흘 만에 창을 열었다. 이곳은 건조하여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올라도 해가 지면 22도 정도로 내려간다. 창문을 열어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고 다시 기온이 오르기 전에 닫아두면, 에어컨을 잠시만 틀고도 여름을 날 만하다. 지난주, 차로 두시간 거리인 캘도어에서 산불이 나고부터 창을 열 수 없었다. 해조차 어디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저 마룻바닥에 희미하게 움직이는 창틀 그림자로 어림잡을 뿐이었다. 오늘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에 연기가 흩어졌다. 뜨거운 볕조차 반가웠다. 묵혀둔 빨래를 돌려 마당에 널고, 제자리를 찾은 일상에 안도했다. 작년엔 산불이 지구 종말을 알리는 것 같아 코로나보다 무서웠는데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캘리포니아 여름 산불을 한국의 황사처럼 절기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만 같다. 아직 우리 집 마당으로 불똥이 튀지 않아서일까?

20년 전 일이다. 한국에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 때였고, 인공강우를 주도하는 과학자와 인터뷰를 했다.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지던 여름이었다. 그는 2, 3년 전에도 시행하려고 준비한 정책이기에 기술에 대한 논란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다시 소란인지 물었다. 당시 정책 실행 단계에서 취소됐기에 논란이 다시 점화된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취소되었는지 물었다. 비가 내렸다고 했다. 그랬다. 비가 와서, 한동안 국정을 들썩이던 정책은 없던 일이 됐다. ‘기우제 행정’ 같아 허탈했다. 과학자는 담담했다. 행정이란 자주 그러했다며, 두둔인지 자기방어인지 모를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 여름 인공강우 정책은 또다시 없던 일이 되었다. 비가 왔기에. 예부터 기우제는 비 올 때까지 올리는 민심 수습책이다.

인공강우 정책을 옹호하려고 꺼낸 일화가 아니다. 인공강우가 가뭄을 대비하는 근본 대책도 아닐뿐더러 2019년 미세먼지 대책으로 거론될 때 그 부작용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럼에도 그때의 일이 떠오른 것은 오늘 하늘이 맑아졌다고 안도하며, 지금도 번져가는 불길을 먼 산동네 일로 여기는 나와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똑같이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에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국의 경우 기후변화는 농부와 어부의 일, 산동네 사람의 일로 취급되는 것 같다. 피해자의 수와 재산이 정치를 좌우하지 못하기에 무시되거나 잊히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언제쯤 표심을 좌우하는 중산층의 정치 의제가 될까? 지금은 김 농사를 망치고, 감 농사를 망치지만, 서울의 지하철역들이 범람하고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하여 중산층의 밥상이 무너질 때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그때는 소득 상위 12%가 보따리를 싸야 하는 그들의 생존 문제가 된 다음일 테니까.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하나 되어 작동한다. 약한 자가 먼저 스러진다. 그래서일까? 비가 왔다고 가뭄 대책이 사라지듯 여러 환경 대책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탄소배출 반감 선언을 지키겠다는 대책들도 인터넷 기사 검색으로만 나타난다. 비용 계산에서, 그리고 다수결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오늘 보이는 저 구름은 어제와 다른 활동 궤도로 진입했다. 과학자들은 지난여름 지구 곳곳을 덮친 파도와 비바람을 온도 상승 영향으로 해석한다. 미국 루이지애나를 강타한 허리케인 아이다만 해도 저녁 뉴스가 나갈 때는 시속 136㎞로 1등급이었다. 모두 잠든 사이 6시간 만에 시속 230㎞ 5등급 허리케인으로 광폭해졌다. 바닷물의 온도가 오른 결과 허리케인이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비바람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지난 40년 사이 허리케인이 미사일처럼 강화될 확률은 1%에서 5%로 증가했다. 세계 경제가 성장에 매달려 무한정 탄소를 배출해온 신자유주의의 시간과 맞물린다.

지구의 물순환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물로 가득 찬 행성에서 구름으로 순환하는 물과 눈, 비에 의존하는데, 1도씩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인다. 점점 더 지독한 물난리와 가뭄, 산불을 겪는 이유다. 인간도 오늘 지구의 활동에 맞는 생활 궤도로 진입해야 하지 않을까?

뉴스엔 추석 민심이 어느 후보에게로 갈까 하는 말이 나온다. 5년만 살자는, 기우제나 흥행시키며 성장을 약속하는 피리 부는 후보에게는 안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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