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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파산 위기' 헝다그룹과 탐욕

신기섭 입력 2021. 09. 23. 18:06 수정 2021. 09. 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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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추석 연휴에 들어간 지난 20일 미국과 유럽 증시가 크게 출렁거렸다.

미국 경제 매체 <시엔비시> (CNBC)를 보면, 내년 3월 만기가 돌아오는 헝다그룹의 회사채 수익률은 지난 5월까지 10% 수준이었지만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두달 사이 135%까지 뛰었다.

블랙록은 8월에 헝다그룹 회사채 5종류를 사들여 현재 4억달러(약 4600억원) 규모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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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신기섭|국제뉴스팀 선임기자

한국이 추석 연휴에 들어간 지난 20일 미국과 유럽 증시가 크게 출렁거렸다.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한때 2% 넘게 떨어지는 등 뉴욕 증시가 약 4개월 만에 최대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유럽 증시는 물론 국제 유가와 비트코인 등도 동반 하락했다.

이날 금융 시장을 흔든 주범은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이다. 이 회사의 부채가 350조원에 달하는 반면 현금은 17조원에 불과한데다가 조만간 거액의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는 소식이 부각되며, 세계적인 금융위기 촉발 우려가 빠르게 퍼졌다. 물가 상승세 등 여러 불안 요인 탓에 취약해진 투자 심리를 순식간에 더 위축시킨 것이다. 그 이후 불안감은 진정됐으나, 상황이 다시 악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

무리한 부동산 투자와 사업 확장에서 비롯된 이 회사의 자금 위기는 몇달 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이는 이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의 시세가 잘 보여준다. 미국 경제 매체 <시엔비시>(CNBC)를 보면, 내년 3월 만기가 돌아오는 헝다그룹의 회사채 수익률은 지난 5월까지 10% 수준이었지만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두달 사이 135%까지 뛰었다. 최근 수익률은 자그마치 560%에 달한다.

수익률 560%는 지금 이 회사의 채권을 사서 만기까지 갖고 있으면 560%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채권의 시세가 액면가의 18%까지 떨어지면서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돈을 떼일 위험이 높아서, 이 회사 채권을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보통의 투자자라면 이런 회사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상식이다. 홍콩의 한 사모펀드 최고경영자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헝다그룹의 채권과 주식을 20년 동안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너무나 위험이 크면, 어느 날 갑자기 낭패를 본다는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식을 무시하는 도박꾼은 언제나 있지만, 최근 이 회사 채권을 사들인 집단의 면면은 약간 뜻밖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지난 7~8월 이 회사의 채권을 추가로 사들였다. 블랙록은 8월에 헝다그룹 회사채 5종류를 사들여 현재 4억달러(약 4600억원) 규모를 갖고 있다. 홍콩상하이은행의 경우, 지난 7월 기준 채권 보유 규모가 5개월 사이에 38%나 늘었다. 두 회사는 추가 매입 배경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유명 투자기관들이 왜 휴지 조각과 같은 헝다그룹 채권을 사들였는지는, 스위스 투자은행 유비에스(UBS)가 지난주 고객들에게 보낸 글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회사는 헝다그룹 회사채 3억달러어치를 매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채권을 매각하면, 향후 건설 활동 재개나 외부 자금 지원, 정책 조정 등에 따른 추가 기회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부 자금 지원이나 정책을 거론한 것은 ‘설마 중국 정부가 헝다그룹을 그냥 파산시키겠냐’는 기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거대 투자자들이 ‘고수익(하이일드) 펀드’를 앞세워 벌인 투자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 개인은 절대 흉내 낼 일이 못 된다는 점이다. 한 중국 여성은 자신의 부모가 헝다그룹이 분양한 아파트를 산 걸 계기로 이 회사가 파는 금융 상품에도 투자했다며 “부모님이 기대한 것은, (어머니의) 값비싼 암 치료제 때문에 어려워진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하는 것뿐이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이 여성은 답답한 마음에 지난주 헝다그룹 본사를 찾아갔으나, 별 소득 없이 돌아서야 했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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