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판치는 '붓다의 나라'..시험대 오른 미얀마 불교

조현 2021. 9. 2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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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의 휴심정]불교문화 9월호 '불교와 폭력' 다뤄
승려들 엇갈린 '쿠데타 대응' 분석
승병장 사명대사의 고뇌도 조명
미얀마에서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나선 스님들. 비티엔(BTN) 화면 갈무리

만약 외국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동포들을 도륙한다면 불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많은 살상을 막기 위해 외국군을 향해 총을 들 것인가. 불교의 첫 계율인 불살생 계율을 지키기 위해 ‘무저항’할 것인가. 불자라면 심각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수없이 외침을 받아온 우리나라에서 불자들의 이런 고민이 적었을 리 만무하다. 최근엔 대표적인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도 군부독재의 폭력과 살상에 맞선 대응을 놓고 불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이 매달 발간하는 <불교문화> 9월호에서 불교계의 이런 고민을 담아 ‘불교와 폭력’을 표지 기사로 다뤘다. 미얀마불교문화연구소 정기선 소장이 미얀마 폭력 사태에 대한 미얀마 불교계의 상반된 대응을 비교했다. 정 소장은 군부 쿠데타 이후 민중 편에 선 젊은 승려들과 달리 최고위급 승려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는 실상을 상세히 전했다. 과거 미얀마 승가는 대영 투쟁부터 2007년 사프란 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의 편에 서 큰 지지와 존경을 받아온 터였다.

미얀마에서 최고의 칭호인 국사의 지위에 올랐던 시타구(84) 스님은 2017년 5월 로힝야족 학살에 연루된 육군 장교들에게 행한 설법에서 ‘비불교도인 로힝야족을 효과적으로 비인간화함으로써 그들을 죽이는 것은 큰 업장(악업에 의한 장애)을 가져오지 않는 행위’라고 로힝야족 학살을 사실상 옹호한 바가 있다. 이번에도 그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진행되는 와중에 군부가 주최하는 불상 봉안식에 증명법사로 참석해, 군부 지도자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던질 것이란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어떤 말도 하지 않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비난을 받았다.

미얀마에서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나선 스님들. 비티엔(BTN) 화면 갈무리

이와 달리 양곤의 봉제공단 지역에 위치한 담마다나수도원 원장이나 보육원 운영자인 우 케이타라(34) 스님은 지난 2월14일 양곤의 흘라잉타야에서 열린 군부 퇴진 시위에서 60여명이 사망하자 승복을 벗고 반군 캠프에 가담해 전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자신을 따라 전사가 되려는 도반들에게는 ‘승가에 남아서 재가자(출가하지 않은 불자)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을 호소했다고 한다. 정 소장은 “도덕성과 청정성을 바탕에 둔 종교가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권력, 특히 군부정권과 손을 잡게 되면 종교의 도덕적 권위는 크게 손상받을 수밖에 없다”며 “4년 연속 (국가 소득 수준에 견줘) 세계 기부 지수 1위였던 미얀마에서 승려에 대한 불자들의 보시 문화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12일 조계종 산하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과 미얀마 스님, 미얀마 청년연대 활동가들이 서울 도심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제공

한편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김진영 명예교수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의 고뇌를 다뤘다. 김 교수는 전란 중에 큰 전공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왜적과 담판해 수많은 포로를 귀환시킨 공적을 세웠음에도 유생들로부터 불살생 계율을 어겼다는 비아냥을 듣는 등 참전의 현실과 수도 생활 사이에서 수없이 고뇌한 사명대사를 그의 시를 통해 집중 조명했다. 김 교수는 “사명대사의 참전은 이름을 드날리기 위함이 아니라 보살심의 자비행이었다”며 허균의 비명을 소개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사명당 비문에서 “대사를 잘 모르는 자는 혹 그가 불법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한갓 세상을 구하기 바빴다고 탓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찌 악마를 죽여 어려운 것을 구제하는 것이 바로 불가의 공덕인 줄 알겠는가”라고 썼다.

충북 제천 월악산 신륵사의 불화 가운데 사명대사의 행장을 담은 그림. 일본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포승줄로 묶으며 병기 소총을 부숴 불태우는 장면이 담겨 있다.

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전중환 교수는 폭력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그는 “폭력은 진화한 인간 본성의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엔 수많은 조절 버튼과 스위치가 있기에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폭력의 발생 빈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법과대학 연기영 명예교수는 “괴로움을 없애는 종합적인 수행법인 불교 수행과 명상법을 통해 폭력의 원인인 화를 잠재우고,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해 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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