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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왜 파란색인가[고재현의 물리학의 창]

입력 2021. 09. 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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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고재현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가을이란 단어에 각자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르겠지만 많은 이에게 가을의 상징은 푸른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의 짙푸른 색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의 빛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파란 하늘을 가만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머리 위쪽의 하늘은 다소 어둡고 짙푸른 색이지만 고도를 낮춰 볼수록 밝아지면서 흰색 톤이 증가한다. 게다가 사진기에 달아 쓰는 편광필터를 하늘에 대고 돌리면 밝기가 변함을 알 수 있다. 즉 하늘의 푸른색은 일정한 밝기와 편광의 패턴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전 '장자'에는 하늘이 띠는 푸른색이 정말 하늘의 색인지 묻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먼 과거의 인류에게도 하늘의 색은 끊임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종교나 정치에서 파란색은 신이나 천구를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늘색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질문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된 듯싶다. 그 질문은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을 거쳐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면면이 이어졌다.

지구의 대기로 쏟아지는 햇빛은 무지개색의 성분이 모두 섞여 있는 백색광이다. 무채색의 백색광이 대기를 지나가며 왜 푸른색을 띠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고전 역학을 완성했던 뉴턴의 설명을 들어보자. 뉴턴의 프리즘 실험은 햇빛이 물질을 통과하며 조금씩 다르게 굴절하는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가장 많이 꺾이는 파란색이 대기의 무언가를 통해 주로 퍼지면서 하늘을 푸른색으로 물들인다고 봤다. 그 원인으로 뉴턴은 대기를 떠도는 매우 작은 수증기 입자들을 꼽았다. 뉴턴의 권위는 그의 이론의 정확성과는 무관하게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여러 과학자들의 더욱 정교한 실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은 뉴턴의 설명이 옳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의 과학자 아라고가 측정한 하늘빛의 편광 패턴은 뉴턴의 빛 이론인 입자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고재현

푸른 하늘의 미스터리는 결국 3대 레일리 남작이 되는 영국의 물리학자 스트러트에 의해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19세기 후반 그는 빛의 파동성에 근거해 푸른 하늘의 색상과 편광의 패턴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다. 현대적 버전으로 이를 설명하자면 푸른 하늘은 햇빛과 대기 중 공기 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다. 빛의 파동은 공기 분자를 흔들면서 분자 하나하나를 사방으로 빛을 퍼뜨리는 초소형 안테나로 만든다. 이 안테나의 효율은 빛의 파장이 짧은 파란색으로 갈수록 급격히 높아진다. 즉 우리가 바라보는 대기는 자신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햇빛 중 주로 파란색을 선택적으로 산란시켜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다. 이를 바라본 우리 눈에 하늘은 당연히 파란색으로 보인다. 공기 분자처럼 미세한 입자에 의한 빛의 산란을, 이 효과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설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레일리 산란'이라 부른다.

레일리 산란은 지구 대기의 푸른색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태양계 내 행성이나 일부 항성의 차가운 대기, 그리고 외계 행성의 색이나 성간물질의 광산란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결국 인류는 푸른 하늘의 기원에 대한 답을 2000년이 넘는 물음의 역사를 통해 얻었다. 이는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수없는 실험과 치열한 숙고, 그리고 이론적 권위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시도로 이루어 낸 과정이었다. 더 멀리 보기 위해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하지만 그 어깨가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 과학의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자유와 담대함이야말로 진리를 얻기 위한 토대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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