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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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거짓에 속고 싶은 사람들

- 입력 2021. 09. 2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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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쌓이면 진짜처럼 보인다.

현실 세계에 떠도는 이야기 속에는 거짓말과 진실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이 한마음이 돼야 거짓말은 완성된다.

분노가 끓어오를수록, 자신이 정의로운 존재라고 과신할수록, 집단에 동조하려는 열망이 클수록 이미 그 사람은 거짓말에 속으려고 마음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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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사실보다 '나는 정의롭다' 지키려 애써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면 거짓인데도 믿어
거짓이 쌓이면 진짜처럼 보인다. 현실 세계에 떠도는 이야기 속에는 거짓말과 진실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무미건조한 설명보다 가짜 뉴스가 만들어낸 생생한 서사가 더 사실처럼 느껴진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진짜를 판별해내기보다 가짜에 속기가 훨씬 쉽다.

가짜뉴스가 파괴력을 갖는 원인 중 하나로 확증 편향을 꼽는다. 자기주장과 일치하는 정보는 수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척하는 심리 때문에 그것에 속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시간 대학교 연구팀은 정치적 주장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에 감정이 끼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실험을 진행하기 전에 미리 파악해둔 피험자 개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이민법이나 사형제도를 주제로 글을 쓰게 해서 분노, 불안, 중립의 감정 상태가 되도록 피험자들의 정서를 유도했다. 그런 뒤에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정치적 주장이 실린 기사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이것이 정확한지 아닌지 판단하도록 했다. 가짜 뉴스를 읽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지 조사한 것이다. 연구 결과, 분노를 느낀 피험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일치하면 거짓인데도 옳은 주장이라고 믿는 경향을 중립적인 감정 상태인 경우보다 더 크게 나타냈다. 불안을 느낀 피험자들에게서는 새로운 정보를 참조해서 기사의 정확성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성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거짓 정보를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오판할 위험도 분노를 느끼면 높아지지만 불안한 상태에서는 그렇지 않다.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가짜 뉴스를 전파 시킬 위험도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카이스트 연구팀이 작년에 발표한 조사 결과다.

분노는 자신이 옳다는 믿음과 함께 활성화된다.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보다 분노를 정당화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나는 정의롭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려고 한다. 우리 뇌는 유혹적인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속삭임으로써 인생이라는 서사에서 자신이 용감한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기관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 거짓말이라도 그것이 옳다고 믿음으로써 자신이 대의에 기여한다고 느낄 때 얻는 쾌감은 진실을 구하려는 의지보다 힘이 더 센 법이다. 버트런드 러셀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며 반드시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 신념에 대한 좋은 토대가 없을 때에는 나쁜 것이라도 일단 믿고 만족해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다수가 옳다고 하면 거짓인 줄 알아도 진짜처럼 믿고 행동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위선적인 존재라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외로워지는 것을 죽기보다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외에 대한 공포가 우리 마음에서 가짜를 진짜로 탈바꿈시키고, 거짓된 믿음을 다 함께 공유하게 만든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건 그만큼 그것에 속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이 한마음이 돼야 거짓말은 완성된다. 분노가 끓어오를수록, 자신이 정의로운 존재라고 과신할수록, 집단에 동조하려는 열망이 클수록 이미 그 사람은 거짓말에 속으려고 마음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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