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없는 '악당' 만드는 '의인 콤플렉스'가 주택시장 망쳤다

유현준 교수·건축가 입력 2021. 09. 24. 03:04 수정 2021. 09. 2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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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전 세계적으로 집값이 오른 배경은 경기부양책 때문에 통화량이 늘어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집값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국내의 경우 다음과 같은 이유가 크다. 지난 10년간 서울시 정책 기조는 민간이 재건축하면 집값이 올라가니 민간 주도의 재건축·재개발은 억제했다. 도심 재건축을 하면 오래된 냉면집 같은 가치가 사라지니 도심 재건축도 막았다. 그러다 보니 주택 공급이 부족했다. 정부는 서울 집중을 분산하겠다고 지방에만 신도시와 아파트를 공급했다. 그런데 KTX와 도로망 확충은 대구까지 한 시간 반 이내에, 세종시까지는 37분 내에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교통이 편해지고 시간 거리가 단축되니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해지고 서울로의 인구 집중은 더 심해졌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올라갔고, 국민이 원하는 집은 오래된 빌라나 다가구주택이 아니라 새로 지어진 민간 아파트에 집중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인 가구가 증가해서 가구 수가 더 필요해졌다. 집값이 오르자 정부는 집을 사기 위한 대출을 규제했고, 상대적으로 전세 대출은 풀어주었다. 인구가 줄어드니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너도나도 전세로 몰렸다. 전셋값이 올라가자 갭투자가 생겼다. 서울의 집값이 더 오르자 정부의 대책은 오로지 ‘다주택자들 때문이다’로 일관해왔다. 세금을 올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번 넘는 부동산 처방 정책이 먹히지 않자 신도시를 만들고 그린벨트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정의로운 ‘공공’이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필요한 돈은 집을 가진 사람들이 부자니까 공시지가를 올려서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고 한다.

해결책이 안 되는 정책을 내놓는 이유는 정치가들의 홍길동 콤플렉스 때문이다. 홍길동은 “‘내가’ 악당인 부자의 돈을 빼앗아서 ‘내가’ 백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정의로우니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정의의 사도였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니까”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악당’을 찾고, 없으면 만든다. 자신들이 ‘선해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은 남의 돈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대신 가난한 사람이 돈을 벌어서 홍길동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설 자유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나쁜 정치가는 그렇게 안 한다. 이들은 중산층을 무너뜨린다. 왜냐하면 국민이 자립하면 정치가가 필요 없어지고 지지자 표가 떠나니까. 그래서 나쁜 정치가들은 국민을 계속해서 의존적인 지지자로 묶어두고 싶어 한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기니까. 그래서 모든 주택도 내가 지어야 하고 신도시도 내가 만들어야 한다. LH는 정치가의 행동대장이다. 그래서 그 조직을 키워왔다. SH와 경기도시공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적자인 LH의 규모가 비대해졌다. 부동산 개발 권력이 공공 기관에 집중되었다. 권력이 집중되니 부패한다.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많은 정책이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은 악의 축이고 공공은 절대 선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했다. LH 사태는 이 논리의 주춧돌이 썩었음을 보여준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는 공공 주택을 지어야 한다. 하지만 중산층의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시장에서 원하는 양질의 주거를 여러 민간 주체가 참여해 대량 공급해야 한다. 인스타그램 속 소규모 펜션들을 보면 좋은 건축적 아이디어들이 넘쳐나는데 왜 아파트만 지으면 다 똑같아질까? 대한민국 아파트 디자인은 몇 안 되는 대형 건설사 상무님들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 다양한 선수들이 들어와서 뛸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신도시는 필요 없다. 기존 도시의 밀도를 전반적으로 높이면 된다. 역세권을 중심으로 밀도를 높이기보다는 서울시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1.5배 정도 용적률을 높이면 사업성이 나오고 민간 자본이 투입되어 도시가 새롭게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교통 체증이 걱정된다면 도시 구조를 슬리퍼만 신고 걸어 다니면서 필요한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슬세권’들로 만들면 된다. 슬세권이 되려면 1층에 필로티 주차장 대신 가게를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하 주차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중소 규모로 재건축할 때 용적률을 높여주는 당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하철 운행 간격을 좁혀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유도하면 된다. 싱가포르처럼 도로 사용료를 자가용 사용자에게 물려서 교통량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지하에 자율 주행 로봇이 다니는 작은 터널을 뚫어서 늘어나는 물류를 지하로 내려보내면 교통량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서울에 부동산 가진 사람만 돈을 벌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생각 땜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서울 땅값·집값만 엄청 뛰었다. 적게 지을수록 기존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서 가격만 오를 뿐이다. 서울 집중을 걱정해서 서울을 업그레이드 안 했더니 수도권 외곽 인구와 출퇴근족만 늘어났다. 지방 균형 발전은 서울에 집을 짓지 않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방은 서울과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때 가능한 거다. 대량 공급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중산층을 튼튼하게 할 것이고, 자립한 자유인, 건전한 국민을 더 많이 만들 것이다. 부국강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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