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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文과 연예인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 09. 2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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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기틀을 다진 카이사르는 장군 출신으론 드물게 쇼(show)에도 능했다. 갈리아 원정 때는 적이 투항하면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반항하면 처형했다. 그런데 항복한 적장 가운데 가장 용맹했던 베르킨게토릭스만은 아무 처분 없이 로마로 압송했다. 황제를 꿈꿨던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을 자랑할 개선식 쇼를 원했고 베르킨게토릭스는 그 쇼의 활용도 만점 소품이었다. 공화정을 신봉하던 로마 시민들이 쇠사슬에 묶인 적장 모습에 손뼉 치며 카이사르를 황제나 마찬가지인 종신 독재관으로 추대했다. 쇼의 위력이었다.

일러스트=김도원

▶정치 쇼가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카이사르의 개선식처럼 국가의 새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다. 오늘날엔 정치적 행사에 국민적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을 주로 앞세운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연예인 사랑은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청와대 초청 인사만 해도 봉준호 감독, 방탄소년단(BTS), 브레이브걸스 등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한 언론에서 조사했더니 정권 출범 후 8개월간 이런저런 행사에 연예인을 부른 횟수가 스무 번 가까웠다. 세계 정상 중에 이렇게 연예인을 이용한 사례가 있었나 싶다.

▶연예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애착을 일찌감치 보여준 게 2017년 중국 국빈 방문이다. 송혜교씨와 아이돌 그룹 엑소(EXO) 멤버들, 한·중 커플로 유명한 추자현씨 부부 등이 동행했다. 혼밥과 한국 기자 폭행으로 파탄 나는 와중에도 송씨는 두 차례, 추씨 부부는 세 차례나 문 대통령 내외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유엔 총회에 참석하며 BTS를 대동했다. 문화 특사로 임명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여러 행사에도 동참했다. BTS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번처럼 ‘포용적 국제 협력’ 같은 비정치적 행동에 대통령과 연예인이 동참하면 국가 이미지에도 도움 될 것이다. 그러나 연예인의 국가 홍보 참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문 대통령의 방미 때 BTS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런데 정작 BTS와 동행한 문 대통령을 이번엔 만나주지도 않았다. 대북·대중 문제에 엇박자를 내는 상태에서 만나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니까 문 대통령의 쇼는 국내용이란 말을 듣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이 내년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 행여라도 연예인을 동원해 공허한 남북 쇼를 할 생각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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