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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로 만든 게 하필 주스라뇨. 외국인들 확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이영지 더비비드 기자 입력 2021. 09.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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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취중잡담] '김치주스'로 K푸드 시장에 뛰어든 패션 사업가 출신의 제품 개발 스토리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 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김치주스 눋2도씨를 개발한 박윤경 Shm 대표와 김치주스. /더비비드, Shm

기자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빈말도 못한다. 김치주스를 개발한 회사라고 해서 인터뷰 약속을 잡았는데, 막상 만날 날이 되니 걱정이 앞섰다. 분명 한번 마셔보라며 권할텐데 맛이 이상하면 어쩌나, 어떻게 평을 해야 하나 머리를 굴려봤지만 답이 안나왔다.

김치로 만든 야릇한 식품이 많다. 김치과자, 김치치킨, 심지어 김치마카롱까지. 어떤 맛인지 알 것 같은데 굳이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 음식들이다. 김치주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다홍빛 액상에 고춧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비주얼이 떠올랐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약속장소에 들어섰다. 예상대로 박윤경 Shm 대표(50)가 웃으며 김치주스를 한 잔 내밀었다. 제품 이름은 ‘눋2℃'. 빨갛지 않았다. 동치미 국물처럼 하얗고 맑았다. 의외네? 잘 삶은 소면을 말아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박 대표에게서 김치주스 개발기를 들었다.

◇잘나가던 패션CEO 출신

파우치에 담겨 판매될 예정인 눋2도씨. /Shm

눋2℃는 백김치를 착즙한 김치원액 주스다. 마시는 김치라고도 할 수 있다. 달지 않고 탄산이 없다. 투명한 병에 담아 판매하던 것을 최근 파우치 형식으로 포장을 달리해 출시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어려서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 쉽게 이루지는 못했다.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패션회사에 지원했지만 줄줄이 떨어졌다. “1990년대는 패션디자이너의 키와 몸무게가 중요하던 때였어요. 직접 의상을 피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죠. 키 165㎝이상이 조건이었는데, 저는 157㎝이라 탈락이었죠.”

박윤경 대표가 운영하던 패션 브랜드 매장, 박윤경 대표 20대 시절. /박윤경 대표 제공

어렵사리 들어간 중화실크, 세종무역 등에서 패션 유통 관련 경력을 쌓았다. “동대문시장에서 제 별명이 ‘베트남’이었어요. 동대문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베트남에 수출하면서, 반대로 베트남에서 가져온 물건을 동대문에 공급하는 일을 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끈 없는 브래지어’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혼자 백팩을 매고 동대문 평화시장을 돌아다니며 이틀 만에 3만개를 팔아치운 적도 있습니다.”

곧 백화점 매대 장사에 뛰어들었다. 동대문에서 가져온 값싸고 질 좋은 옷을 갤러리아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만원에 팔았더니 사람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매대에서 파는 옷장사를 ‘누운 옷을 판다’고 표현해요. 정식으로 입점해 파는 건 ‘서서 판다’고 하죠. 누운 옷을 팔다가 서서 팔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1996년 이름을 걸어 ‘아이엠바이박윤경’이라는 패션 회사를 차렸다. 서울 회현동에 있는 소형 남성복 공장에서 여성용 정장을 만들었다. 직접 디자인한 박스형 원피스, 여성용 더블자켓 등을 심은하, 하희라 등 당대 최고 여배우가 입어 화제가 됐다.

박윤경 대표 패션 브랜드의 옷을 입은 배우 심은하씨. 장면은 영화 '미술관옆동물원'. /박윤경 대표 제공

법인을 설립해 15개 매장을 내고 승승장구하다 돌연 사업을 접었다.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5년 간 가정에 전념하다 가족을 위해 다시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승마선수였던 친오빠가 말을 다시 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오빠가 다시 말 안장에 오를 수 있도록 친정 식구 모두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가족 사업으로 승마장을 하기로 결정한 거죠.”

박 대표의 오빠는 최연소 국가대표이자 1986년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박소운씨다. 가족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박소운씨 연습장을 겸해, 경기도 이천에 1만 3200㎡(약 4000평)의 승마 클럽을 세웠다. 스티븐 승마클럽은 2009년 2월 정식 오픈하자마자 최우수 승마장으로 선정됐다. “개인사업자나 대기업 관계자들이 찾아와 승마장 건설 과정에 대해 컨설팅을 요청할 정도였어요. 그때마다 한 푼도 받지 않고 그간의 시행착오를 공유했죠.”

◇그 많은 제품 중 하필 김치로 만든 주스라니

2016년 한국 기업비즈니스 사절단에 승마산업 대표로 참석했다. 동그라미 친 인물이 박 대표. /박윤경 대표 제공

승마장을 하면서 잦아진 해외 출장이 김치주스 개발의 시발점이 됐다. “해외 가면 그 나라 특색 요리를 먹어 보는데, 알고 보면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요. 그만큼 음식의 세계화가 진행됐다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나라 음식은 그렇지 않죠. 왜 한국 음식만 세계화되지 못했을까요?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셰프(전문 요리사) 없이도 전세계인이 한국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노셰프 프로젝트’라 불렀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소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발사믹 소스는 이탈리아 음식에서 나온 소스인데 지금은 어느 나라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쓰이죠. 한국에도 그런 소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스를 개발하기 위해 익산 식품 클러스터 단지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을 찾았다. 실용화재단에서 기술이전을 받을 수 있는 아이템 중 ‘김치소스’가 눈에 띄었다. “김치는 한식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요. 어떤 음식에나 활용할 수 있는 김치소스가 떠올랐어요. “

하지만 제품화에 실패했다. 소스 개발은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았다. 대신 김치공장을 찾아다니며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식품을 모조리 조사했다. 외국인이 쉽게 김치를 접할 수 있게 하려면 별도 조리 과정이 필요 없는 ‘완제품’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더운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마시던 동치미 국물을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주스로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김치’하면 흔히 떠올리는 빨간 국물보다 거부감이 덜 들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개발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김치주스. /Shm

백김치를 주스로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백김치를 갈면 섬유질이 함께 갈려 백김치 본연의 맛이 나지 않았다. 숙성정도나 보관방법에 따라 염도가 달라져 쓴맛이나 섬유질 풋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정확한 레시피가 필요했다.

“김치공장에서 백김치를 받아 집에서 주스를 만든 다음 여러 조건 별로 보관해 봤어요. 착즙의 정도, 온도, 보관기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더군요. 최상의 맛을 찾기 위해 한국기능식품연구원에 샘플을 가져가 산도(ph), 나트륨 함량, 유산균의 수 등의 데이터를 측정했습니다.”

백김치를 주스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해냈다. “이왕 해보기로 한 거 처음부터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최적의 온도와 발효 기간 등을 찾는 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김치주스 유통 과정에 관한 특허도 출원했다. “방부제 없이도 김치주스를 전 세계로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

한창 김치주스를 연구하고 있을 때 미국 아마존에서 김치주스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출시했다고 해서 질투심을 느끼거나 좌절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김치를 알리려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구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죠. 이를 계기로 눋2℃의 경쟁력에 대해 더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소스에서 출발해 주스로 발전한 제품이기 때문에 소스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눋2℃에 소면만 풀면 김치말이 국수가 되는 것처럼요.”

◇K-푸드 수출길을 열고파

인터뷰 중인 박윤경 대표. /더비비드

2021년 7월 눋2℃가 탄생했다. 눋은 ‘누드(nude)’를 가리키는데, 가공적인 맛을 내지 않은 투명한 맛이라는 뜻을 담았다. 2℃는 김치주스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다. “치킨이랑 함께 드셔보시라고 권하고 있어요. 짜고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음료수를 찾곤 하는데요. 탄산음료보다 저염 백김치로 만든 김치주스가 훨씬 궁합이 잘 맞는다고 확신합니다.”

김치주스는 일반 음료와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열무국수 같은 소면 요리 하실 때 눋2℃를 동치미 국물 대신 활용하면 간편해요. 맛이 깔끔해지죠. 굳이 김치주스를 과일 주스나 콜라를 대체하는 음료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눋2℃는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비건(vegan) 백김치를 100% 착즙한 것이 특징입니다. 한마디로 ‘마시는 김치’인 것이죠.”

기존 김치 관련 식품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거부감을 없애는 데 집착하지 않고, 여러 특징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전략이다. “외국인도 쉽게 맛볼 수 있는 김치를 만든다고 하면 뭔가를 빼야 한다고들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젓갈이나 마늘, 고춧가루 같은 것들을요. 우리 김치의 장점 중 하나는 종류가 많다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백김치는 우리나라에 고춧가루가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하던 전통 김치죠. 백김치는 뭔가를 빼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제품 개발 초기부터 목표가 수출이었습니다. 우리 김치를 100% 있는 그대로 해외에 알리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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