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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우리를 위협하는 최대 위협은 내부의 적

여론독자부 입력 2021. 09. 24. 07:01 수정 2021. 09. 2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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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민주주의 경외심 내팽개친 공화당
9·11 테러도 정치적 이득으로 계산
국가 위기 상황에도 부유층 稅 인하
원하는것 얻기위해 무슨 짓이든 해
[서울경제]

다소 끔찍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언론계 종사자들은 9·11 이후의 몇 달에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일부 평자들은 테러 공격 이후 형성된 단단한 국민적 결합을 공공연히 그리워한다. 필자가 받은 느낌은 그보다 조금 미묘하다. 사람들은 미국이 직면한 위협이 자생적인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라 외부의 광신자들에게서 왔던 날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황금처럼 빛나는 단합의 순간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낱 신화에 불과하다. 미국 민주주의의 암담한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같은 신화를 영구화하려는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국내의 정치 집단은 처음부터 9·11을 국론 통일을 추구해야 할 순간이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바라봤다.

공포의 와중에서 표출된 이 같은 냉소주의는 국가가 외부 공격을 받을 때조차 우리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공화당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완전한 독재 정당이 아니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용의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반대 세력의 정통성을 경멸한다. 우리는 지난 1월 6일의 정권 찬탈 시도로 이어지는 길을 군소리 없이 따라갔고 정권 찬탈 시도를 사실상 지지한 공화당은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9·11 직후 조지 W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테러 사태를 이라크 침공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는 국방부 청사가 불타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자신의 보좌관에게 “관련이 있건 없건 이라크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몽땅 쓸어 담으라”고 지시했다.

일부 언론 집단도 9·11 테러의 잔혹성을 이라크를 침공하는 빌미로 삼으려는 정부의 의도를 거들어줬었다고 시인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뉴욕타임스는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했다.

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9·11을 부당한 핑곗거리로 삼은 사실은 (그 자체로 국민의 신뢰를 남용한 용서받지 못할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개 담론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국내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테러를 활용한 것은 전무한 일이었다.

우리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들이 전 국민의 희생 분담을 요구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는 테러 공격에 맞서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금을 인하했다. 실제로 공화당 소속인 하원세입위원회 위원장은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후 채 48시간이 되기도 전에 소득세율 인하안의 소위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후 하원 공화당 간사인 톰 딜레이는 “전시에 세금 인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선언했다. 결국 2003년 5월 공화당은 이라크전 승리라는 환상을 앞세워 양도소득세와 주식 배당금 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공화당 행정부가 점령지인 이라크를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나라의 재건은 미국이 지닌 최고의 인적 자산을 총동원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프로젝트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정치적 추종자들을 위한 논공행상에 사용했다. 이라크 재건 작업에 참여할 업체 선정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낙태를 여성의 합헌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대한 기업들의 견해를 캐물었고 2000년 선거에서 어느 쪽을 지지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간단히 말해 테러 공격이 단행됐을 당시 공화당은 이미 (스스로를 국가 이익의 일시적 관리인으로 간주하는)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저지르려 작심한 집단이었다.

2003년 필자는 공화당이 ‘하나의 운동’에 전념하는 정당이며 그 지도부는 현 정치 시스템의 정통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필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공화당의 권력 남용을 지적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경고론자’로 매도됐다.

그러나 경계론자들의 날카로운 경고는 이제까지 빗나간 적이 없다.

맞는 얘기다. 그래도 과거에는 몇 안 되는 정상 참작 요인이 있었다. 조지 부시는 반무슬림 역풍을 다스리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9·11 이후 단 6일 만에 이슬람 센터를 방문했고 모든 종교를 존중해줄 것을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광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심지어 그보다 더욱 방대한 일련의 새로운 전쟁을 요구했던 보수주의 지식인들, 즉 네오콘의 유력 인사들은 달변에 심지어 용감하기까지 한 트럼프 반대론자(Never Trumpers)로 변신했다. 이는 민주적 가치의 확산에 대한 그들의 신념이 잘못된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진심이었음을 시사한다. 비록 그들이 선택한 정치적 연합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지만 말이다.

오늘날 공화당이 관용과 민주주의에 대한 경외심을 모두 내팽개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한 줄의 실에 위태로이 매달린 지금의 이곳을 향해 우리는 오랫동안 걸어왔다.

미국은 20년 전 처참하게 공격당했다. 그러나 그때에도 문제가 되는 일들은 나라 밖이 아닌 나라 안에서 터져 나왔다. 미국이 상징하는 모든 가치에 대한 진정한 위협은 외국인 자살 폭탄 테러범이 아니라 우리 안의 우익으로부터 나온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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