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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다" 성묫길 교통사고 현장 살피다 숨진 의사 이영곤씨

백승목 기자 입력 2021. 09. 24. 13:35 수정 2021. 09. 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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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 이영곤씨. 유족 제공

추석 연휴기간 성묘를 다녀오던 60대 의사가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다가 다른 차량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평소에도 교도소 재소자 진료 등 선행을 꾸준히 베풀어온 의사였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 22일. 이날 오전 11시53분쯤 경남 진주시 정촌면 남해고속도로 순천 방면의 진주나들목 인근에서 SUV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남 사천시 정동면에 있는 선친 묘소를 찾았다가 귀가중이던 이영곤씨(61)는 현장을 목격하고, 즉시 자신의 차량을 갓길에 세웠다. 그는 사고차량으로 달려가 탑승자의 부상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탑승자는 가벼운 상처만 입은 상태였다. 탑승자가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인 것을 확인한 이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갔다. 이씨의 운명은 그 순간 엇갈리고 말았다.

사고현장 뒤에서 1차로로 달려오던 또다른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차량에 탑승하려던 이씨를 덮쳤다. 이씨는 심한 출혈과 함께 의식을 잃었고, 긴급 출동한 구급대가 그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고인은 24일 진주 경상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진주화장장으로 향했다. 그의 유해는 경남 사천시 정동면에 있는 선영에 안장됐다. 이씨가 남기고 간 30여 명의 유족과 지인들은 그가 떠나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아들 승규씨(33)는 “아버지는 늘 ‘남을 도우면서 살라’는 말씀을 하셨다”면서 “당신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시다 이런 참변을 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 이영곤씨의 유해가 24일 경남 사천시 정동면 선영에 안장됐다. 김헌규 변호사 제공

경남 사천 출신인 이씨는 평생 가족과 이웃·환자들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는 진주 중앙시장 인근에서 30여 년간 ‘이영곤 내과의원’을 운영했다. 병원을 찾은 환자 가운데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환자는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지역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도 수시로 내놨다. 이씨의 지인들은 “학창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한 친구”라며 “평소에도 자신이 받은 만큼 사회에 도움을 주겠다는 일념이 강했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매주 2~3차례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을 상대로 진료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으려했기 때문이다.

발인식에 참석한 고인의 지인들은 “이씨가 사고현장에서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며 “23일부터 자신의 병원에서도 코로나19 백신접종을 한다고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고인과 진주고교 동기인 김헌규 변호사(61)는 “오로지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환자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의술을 베푼 진정한 의사였다”면서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변을 당한 만큼 의사자로 지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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