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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유럽의 것이 아닌 동서양의 것..'글로벌르네상스' [책과 삶]

문학수 선임기자 입력 2021. 09. 24. 15:06 수정 2021. 09. 2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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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글로벌 르네상스

리사 자딘, 제리 브로턴 지음·임병철 옮김/길/314쪽/2만8000원

‘르네상스인(人)’이라는 말이 있다. ‘완전무결한 인문주의자’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다방면에 걸친 인문적 지식과 통찰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인품도 고결한 인물을 일컫는다. 이 책에 따르면 “존재하는 실제”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꿈”이다. 어쨌든 이 말은 르네상스에 대한 상찬(賞讚)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르네상스는 서구 예술사가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예찬의 대상이었다. 14~16세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이 문화운동은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전통을 모범으로 삼는다고 알려져 있다. ‘중세 1000년의 암흑’에서 벗어나 마침내 찬란한 문화의 시대를 연 것으로 해석돼왔다.

오늘날 서양미술사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의 <서양미술사>는 ‘The story of art’라는 원제를 지녔다. 직역하면 미술의 역사다. 이 책은 서구의 시선으로 미술사를 읽어낸다. 앞부분에서 잠시 언급되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불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짧은 서술은 전체적 맥락과 분량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 역점을 두는 부분은 ‘서구의 르네상스’다. 곰브리치보다 100년쯤 앞서 태어났던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는 서구 문화의 폐쇄적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단연코 거장이다. 그는 “어떻게 유럽 문화가 그리스와 로마에 뿌리를 둔 직계들에 의해 발전해왔는가를 보여주려고 시도”했으며, 그중에서도 15세기 이탈리아 인문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혁혁한 공을 돌렸다. “그들이 복원한 고전 전통”이야말로 “미학적으로 흠결 없는 순수예술과 지적 사고의 체계를 낳았”으며, 그것은 곧 “서구 문명의 지속적 승리”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이렇듯 서양의 역사에서 르네상스는 유럽 문명의 본질, 유럽 근대의 출발로 인식돼왔다. 아울러 서구 예술을 지구촌 다른 곳과 구별하면서 더 우월한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준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글로벌 르네상스’라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삐딱한’ 관점을 제시한다. 옮긴이 임병철 한국교원대 교수에 따르면, ‘르네상스는 유럽의 것’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교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을 좀더 인용하자면 “(저자들이) 흥미롭게 검토하고 있는 예술품들은 전통적으로 유럽으로 알려져온 세계의 경계선을 넘어 유통되고 순환됐으며, 더 나아가 동서양의 공유된 관심 속에서, 또 어떤 경우에는 지극히 동양적 기원 속에서 제작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글로벌’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제적 통합과 상호의존, 국경을 뛰어넘는 인적·물적 교류는 이제 일반적 현상이다. 한데 이 책의 저자들은 그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들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야말로 글로벌”했다. “지금 시대에 버금가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동·서양이 서로 만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된 문화가 창출됐다”(옮긴이)는 것이다.

저자들은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그런 지점들을 서술해나간다. 예컨대 16세기 말 활약했던 영국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대하 서사시 <선녀여왕>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아서왕과 요정의 여왕 글로리아가 가장 중요한 캐릭터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서사시 1권이 절반가량 흐를 때까지도 아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국적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또 다른 인물”이 전반부를 주도하는데, 이 인물은 오늘날 터키 땅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난 성 제오르지오(St. George)라는 기사다. 그는 15세기 동서양의 그리스도 교회를 통틀어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였던 비토레 카르파초는 그가 리비아의 실레네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던 용을 용감하게 물리쳤다는 전설을 매우 빼어난 회화로 남겨놓기도 했다.

젠틸레 벨리니의 ‘메흐메트 2세의 초상’. 메흐메트 2세는 무슬림 군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폴리스(오늘날의 이스탄불)를 함락했다. 베네치아 출신이 화가 젠틸레 벨리니가 메흐메트 2세의 초상화를 그렸다. 도서출판 길 제공


카르파초는 베네치아에서 최고의 화가로 손꼽혔던 젠틸레 벨리니의 제자였다. 벨리니의 그림은 르네상스 시기 동서양의 만남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중에서도 ‘메흐메트 2세의 초상화’를 소개한다. 당시 벨리니는 “베네치아 의회에 의해 대여의 형식으로 파견돼 술탄이 고용했던 궁정 예술가”였다. 그래서 1479년 술탄의 초상화를 그렸다. 역시 이런 관례에 따라 파견된 코스탄초 다 페라라는 “오스만의 궁정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메흐메트 2세의 초상메달을 제작했다. 앞면에는 술탄의 얼굴이, 뒷면에는 말을 타고 위력을 과시하는 모습이 새겨진 메달이었다. 이것은 이후 유행했던, 서유럽 왕들을 형상화한 메달들의 “본보기”였다.

코스탄초 다 페라라가 제작한 메흐메트 2세의 초상메달 앞면. 1481년경 코스탄초가 제작한 메흐메트 2세의 초상메달은 오스만적 예술품이나, 서유럽의 예술적 전통이 강하게 배어들어 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코스탄초 다 페라라가 제작한 메흐메트 2세의 초상메달의 뒷면. 도서출판 길 제공

책에는 14세기부터 유통됐던 태피스트리에 관한 언급도 등장한다. 태피스트리는 “궁전과 교회를 장식하기 위한 대규모 맞춤 걸개”로 기능하면서 수요가 커졌다. “초기에는 오스만이나 부르고뉴의 궁전에서 용이하게” 전유되었다가, 16세기부터 서유럽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열망을 담아내는 매체로 변화”했다. 이어서 등장하는 말(馬)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말과 권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앞서 언급한 메흐메트 2세의 초상메달 뒷면에서도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했는데,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1548년 그린 ‘뮬베르크 전투에서의 카를 5세’는 한층 더 생생하고 공격적으로 “제국의 권력을 재현”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1548년경 그린 ‘뮬베르크 전투에서의 카를 5세’. 말과 권력을 동일시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나타난 현상으로, 이 그림은 한층 더 생생하고 공격적으로 제국의 권력을 재현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여러 사례를 통해 르네상스의 맥락을 다시 짚어내려는 저자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부르크하르트적인 인종적 본질주의”를 비판하면서, 르네상스는 “공유된 역사”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다만, 제목에 등장하는 ‘글로벌’이라는 수식어에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동서양의 만남을 얘기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책에서 거론하는 두 지역은 ‘글로벌’보다 ‘로컬’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지역의 문명 교류는 굳이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고대부터 이미 존재했다. 그럼에도 일독을 권하는 까닭은, 서구의 주류 예술사학자들이 고수해온 관점을 바꿔보려는 저자들의 의지 때문이다. 리사 라딘은 과학사와 예술사, 문화사를 넘나들며 유럽 근대사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내놓고 2015년 타계했다. 제리 브로턴은 영국 런던의 퀸 메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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