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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장동 의혹과 대선 후보의 자질

입력 2021. 09. 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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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층 양보를 강조한 경제 신간
대장동이 드러낸 기득권의 윤리 부재
대선주자 핵심 역량은 이들의 양보 도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 경제의 과제인 청년 일자리 해법을 모색하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기득권층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 상담 창구. 뉴시스

추석 연휴 직전 '성장과 일자리, 해법은 있다'라는 책(백산서당)이 신간 소개 부탁과 함께 사무실로 배달됐다. 한국은행에서 금융안정분석국장과 도쿄사무소장을 지낸 두 분이 공동 저자였다. 한국 경제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인식, 기득권 계층의 솔선수범 희생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이 갔다.

저자들은 개혁의 기본방향은 소위 잘나가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 사이의 과도한 보상격차의 축소라고 주장했다. “보상격차 축소는 지속 성장을 위한 기본정책이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분배정책이고,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기득권 계층의 자발적 양보가 분배구조 정상화와 어려운 개혁의 물꼬를 트는 전략적 과제라는 지적도 곁들였다.

기득권 계층의 양보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지난해 우리의 ‘K방역’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때 일이 떠올랐다. 코로나19 취재 때문에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한 저녁 자리였다(당시는 저녁 식사 인원제한이 없었다). 후배 기자가 재미있지만, 의미심장한 사연을 소개했다. ‘K방역’에 대한 독일 당국 문의를 받은 우리 당국자가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후배가 전한 상황은 이랬다. 독일 공무원이 “휴일ㆍ주야 없이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놀라운 체계를 알려달라”고 물었다. 우리 당국자가 상황을 소개하자, 후속 질문이 들어왔다. “해당 공무원에 대한 대체휴일 보장, 홀로 남겨질 공무원 자녀에 대한 돌봄 지원방안도 알려 달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K방역의 성공은 방역당국 종사자와 의료진의 국제 수준을 뛰어넘는 희생 속에 지탱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특정 사회가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룰 때에는 특정 세대와 계층의 희생이 뒤따른다. 우리의 경제성장도 그렇게 이뤄졌다. 현재 70대 이상 세대의 상당수는 압축성장기를 보내면서도 그 과실을 얻지 못했다. 노인 빈곤 비율은 40%를 넘는다. ‘헬조선’을 한탄하고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현재의 청년층도 그런 세대가 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책의 저자들은 공권력이든 거대 노조이든 제도권 보호 아래에 있는 계층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상위 10% 소득계층의 솔선수범 양보를 통해 절감된 예산으로 청년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선수범이 경제 전반에 퍼지면 일자리 문제 해법이 쉽게 나온다는 논리다.

성과를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노력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정의롭지 않고 발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과를 이룬 사람들의 양보는 더 고귀하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면서 ‘도덕감정론’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장동 의혹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건 천문학적 이득 때문만은 아니다. 전직 대법관과 변호사 등 명예와 권력을 누린 인물들이 양보 대신, 넘봐서는 안 되는 금전적 이익까지 부당하게 추구한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정의론의 대가인 마이클 왈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와 명예, 권력은 서로 다른 원칙과 절차에 의해 서로 다른 주체에 분배돼야 한다. 권력자가 부를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기득권층의 양보를 요구하는 개혁의 해법과 대장동 의혹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윤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결국 3, 4명으로 좁혀진 대권 주자들의 옥석을 가릴 핵심 역량도 국민들에게서 양보를 이끌어 내는 능력에 달린 셈이다. ‘국가가 뭘 해줄지 묻지 말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는 존 F. 케네디에 버금가는 감동적 연설이 내년 우리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올지 여부도 거기에 달렸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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