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백영옥의 말과 글] [219] 상팔자론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1. 09. 25. 00:00 수정 2021. 09.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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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만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지는 때도 없다. 이때를 전후로 쏟아지는 ‘명절 이혼’ 같은 헤드라인도 클리셰처럼 인기 기사 목록을 지키고 있으니 더 그렇다.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인지 추석 때 ‘신이 내린 대한민국 3대 남편’이라는 장항준, 이상순, 도경완의 인터뷰를 차례로 봤다. 장항준 감독은 7년 전 직접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옆에는 남편의 박장대소 인터뷰에도 아랑곳없이 초집중 모드로 대본을 쓰던 김은희 작가가 있었다.

자신의 커리어가 있음에도 ‘누군가의 남편’으로 불리는 게 속 편하지 않다는 건 쉽게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상팔자론’을 구축한 장항준 감독은 상대적으로 김은희 작가가 지금보다 덜 유명하던 시절에도 “제작사 측에서 우리를 김앤장!”으로 부른다며 아내를 치켜세웠었다. 또 시냇물처럼 종일 흐르는 아내의 자판 소리를 들으면 “저게 다 돈 버는 소리구나!” 싶어 맘이 평온했다는 말을 참 밉지 않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사이 좋은 부부들을 보면 서로를 귀여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모를 그 귀여움 때문에 화가 나려다 말거나, 화가 덜 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귀여움 속에는 ‘짠함’과 ‘존경심’도 포함돼 있다. 부부 사이가 늙어갈수록 섹시해지는 것은 어렵지만, 서로가 더 귀여워질 수는 있다. “티비를 볼 때, 서로 분노하는 지점과 웃는 지점이 같아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웃는 포인트가 같다는 건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분노하는 지점이 같다는 건 세계관이 통한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랑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 것이다”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은 유효하다.

하늘이 내린 꿀 팔자란 스스로 만드는 것 아닐까. 인간 심리란 참 희한해서 친구나 가족의 큰 성공에 기뻐하는 것이 큰 슬픔에 함께 우는 것보다 언제나 더 어렵다. 가까운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능력은 실은 자존감과 직결돼 있다. 그것이 아내라 해도 나에 대한 믿음 없이 타인의 성공에 마음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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