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운으로 가득한 패션계 이야기

김미강 2021. 9. 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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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향한 열망이 패션계에서도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우주의 기운

“하늘은 어둡고, 우리가 사는 지구는 푸른빛이었다.” 1961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지구라는 행성 저 너머의 신비로운 세계, 우주 공간에 몸을 맡긴 채 지구를 바라보며 역사에 길이 회자될 문장을 남겼다.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 역시 지구를 ‘아름다운 보석’이라 칭송하면서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때는 모두 1960년대, 전 세계를 휩쓴 각종 전쟁과 분쟁 끝에서 인류는 우주라는 새로운 세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앞다퉈 우주산업 투자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인류가 감히 닿지 못할 이 원대하고 경이로운 시공간에 새로운 희망의 에너지를 싣고 이제껏 본 적 없는 다른 차원의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 것. 그 후 오랜 시간 우리 ‘지구인’들은 우주를 향한 폭발적인 호기심과 경외심을 바탕으로 우주 세계의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데 힘써왔다. 그리고 2021년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우주를 향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수직 상승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올해를 장식할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우주산업의 중심엔 세계 최고의 억만장자들이 이 흐름을 견인한다. 세계적 갑부이자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최근 그룹 CEO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파격 선언을 한 후 곧장 다음 스텝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우주산업에 본격적인 투자 의사를 전하며 자율조종 로켓 ‘뉴 셰퍼드호’에 탑승해 3분 동안의 성공적인 우주 관광을 마쳤다. 제프 베이조스 이전에 이미 버진 갤럭틱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71세의 나이에 우주선에 몸을 실었으며, 우주 여행을 마친 후 일반인을 상대로 5억 원 상당의 우주 관광 상품을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괴짜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도 우주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 ‘화성에서 죽고 싶다’던 그는 테슬라 외에도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를 이끌며 화성 탐사 우주선, 우주정거장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는다.

한편 전 세계를 주름잡는 억만장자들의 우주적 행보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최근 같은 궤도를 그리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MZ세대와 소통하며 미래를 설계 중인 디자이너들에게 앞서 언급한 억만장자들과 같이 우주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설계할 수 있는 테마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과거 피에르 가르댕과 파코 라반, 앙드레 쿠레주가 우주를 향한 열망을 미래적인 컬렉션으로 풀어낸 바 있으며, 후세인 샬라얀과 알렉산더 맥퀸, 티에리 뮈글러 또한 우주를 주제로 참신한 컬렉션을 선보여 패션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런가 하면 그랑 팔레에 커다란 로켓을 띄운 샤넬, 데뷔 쇼를 기념해 우주복을 입힌 흑인 모델로 피날레를 장식한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 쇼 등…. 미래를 향해 한 발 내디딘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시도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이번 시즌, 새 시대와 마주한 패션 하우스들의 ‘멋진 신세계’는 또다시 명징한 빛을 발한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를 겨냥한 버추얼 게임으로 승부수를 띄운 발렌시아가 컬렉션에서 화제가 된 건 바로 나사(NASA)와 협업한 우주복인데, 이는 아폴로 발사를 예고한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연설 50주년을 기념한 결과물. 물론 ‘진짜’ 우주복과 동일한 기능성은 기대할 수 없지만, 나사 우주복 디자인을 완벽하게 재현한 아우터웨어는 우주와 일상의 접점이 과거보다 급격하게 가까워졌음을 시사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감이 비로소 좁혀지고 우주가 더 이상 실체 없는 가상이 아닌, 우리 현실에 밀접하게 침투하고 있음을 또 다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보며 깨닫는다. 시종일관 미래적 키워드를 적극 반영한 메탈릭 스페이스 룩과 로봇을 런웨이에 등장시킨 돌체 앤 가바나부터 당장이라도 우주로 향해야 할 것 같은 발망 런웨이, 루이 비통의 사이파이 무드 드레스를 보면 비로소 우주 친화적 패션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매번 클래식하고 우아한 이탤리언 무드를 고집해 온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가타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SF영화적인 패션 필름과 컬렉션으로 파격적 변화를 꾀한 폴 앤드루는 젊은 MZ세대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와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주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필수라고 말할 정도니까. 때마침 도쿄올림픽 폐막식을 장식한 2024년 프랑스올림픽의 홍보 영상 속 유럽우주국(ESA) 소속 프랑스 우주인 토마 페스케의 색소폰 연주가 전 세계인에게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경이로운 우주 공간에서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며 색소폰 연주를 선보이는 장면을 감상하고 있자니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라는 시공간이 보다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비현실적이라 여겼던 옷들도 동시대인의 일상과 기민하게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52년 전 닐 암스트롱이 내디뎠던 ‘작은 한 걸음’이 비로소 ‘인류의 위대한 도약’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2021년 현재의 우리는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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