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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코스메토르를 기다리며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입력 2021. 09. 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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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타인의 강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삶을 선택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함께 살아갈 세상의 모습을 형성하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정당함이 없는 권리에 순응해야 할 때 비애감이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왕을 절대적 권력자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정자로 인식했다. 왕을 뜻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코스메토르’는 ‘코스메오하는 사람’, 즉 ‘정돈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제적인 지배를 경계하는 동시에 정치를 미학화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정치권력을 얻으려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가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적임자라고 말한다. 자기가 적임자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정치인들은 설득의 기술을 발휘한다. 물론 그 도구는 말이다. 말을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자연의 이치, 인간이 따라야 하는 도덕 법칙, 그것을 파악하는 인간의 이성 등이 그것이다. 정치판은 로고스가 드러나야 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적 설득의 묘를 발휘하기보다는 상대편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한다. 그가 왜 부적격자인지를 드러내는 편이 자기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말의 난장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진실과 그 나라의 미래이다.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그 승리의 기쁨 속에는 패자들의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말이 문제다. 말이 세상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 이름은 지혜로운 사람의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그는 이스라엘의 국력을 최대치로 신장시켰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화려한 궁전을 지었고, 사회 통합의 상징으로서 성전을 짓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은 솔로몬의 최대 치적을 성전 건축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어둠도 짙은 법이다. 솔로몬 치하에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왕실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과중한 세금을 부담시켰고, 양곡 저장 성읍, 병거 주둔 성읍, 기병 주둔 성읍, 궁전, 성전 등 대규모 토목 공사를 위해 성인 남성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성경은 성전 건축을 출애굽 사건의 완성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 솔로몬 시대는 출애굽 정신을 철저히 훼손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전제정치로 이끌어 들였으니 말이다.

잠복되어 있던 불만은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할 때 터져나왔다. 백성의 대표들이 그를 찾아가 솔로몬 시대의 가혹한 정책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민중들의 고충을 알 리 없는 측근들과 상의한 후 이전보다 더 강화된 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로 인해 여로보암이라는 지도자를 따르는 이들이 독립하여 북쪽에 이스라엘 왕조를 세운다. 바야흐로 남북 분단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솔로몬의 황금시대는 이렇게 끝났다. 가장 큰 치적으로 여겨졌던 성전 건축이 오히려 분단의 단초가 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인 정현종은 ‘권좌(權座)’라는 시에서 사람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권좌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이렇게 노래한다. “권좌는 저주의 수렴이요/ 권좌는 치욕의 원천이며/ 권좌는 강력한 오점이다.” 권력의 들큼한 맛에 취하는 순간 로고스는 뒷걸음질하고 냉소와 조롱과 악다구니가 그의 영혼을 잠식한다. 권좌에 대한 욕구가 치욕의 원천인 것은 그 때문이다. 대립은 정치 행위 속에 불가피한 것이지만,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타자의 삶 전체를 능멸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도 똑같은 덫에 갇힐 수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과정이 진행 중이다. 냉철하고 탁월하며 품위 있는 말이 오가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미지로 포장되어 실체를 알 수 없는 말들이 떠돌며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다. 말을 망가뜨리는 것처럼 큰 죄가 또 있을까? 신뢰의 토대인 말이 타락하는 순간, 세상은 혼돈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욕망에 부합할 길만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코스메토르적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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