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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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윤석열·홍준표의 이종격투기

최경운 기자 입력 2021. 09. 25. 03:00 수정 2021. 09. 2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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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홍준표, TV토론서 서로 "보수 궤멸 주역" 공격
정체성 잃지 않되 반칙 없는 정통 격투기 묘미 보여줘야
9월 16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자 1차 방송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후보(왼쪽)와 홍준표 후보. /조선일보DB

기업 출신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기업과 정치권의 차이를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이 의외였는데 그럴싸했다. 그는 “한눈팔면 뒤통수에 총알이 날아드는 건 같은데 기업에 있을 때와 달리 정치판에선 누가 총을 쐈는지 찾을 길이 없더라”고 했다. 자기를 겨눈 총탄이 난무하지만 총구(銃口)를 찾을 수 없어 막막한 정글 같은 곳이 정치판이란 뜻이다.

추석을 목전에 두고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1차 TV토론은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균 시청률 6%대를 기록했고 윤석열·홍준표 후보가 격돌할 때는 순간 시청률이 8%를 넘었다. 하지만 윤·홍 두 사람의 정공법을 앞세운 타격전을 기대했던 시청자 중에선 실망한 이도 적잖았다. 누가 대통령감인지를 겨루기보다 정치판의 음습한 ‘총구’ 찾기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제보를 모의한 자리에 홍 후보 측 인사가 동석한 것 아니냐고 윤 후보 측이 의심하고, 이에 홍 후보가 “허위 정치 공작”이라고 반발하면서 급기야 당대표가 양쪽에 ‘경고장’을 날렸다.

윤 후보 측이 자신들을 겨눈 공격의 총구를 찾아 나서고, 의심받는다고 느낀 홍 후보 측이 윤 후보 측을 향해 총구를 잘못 찾았다고 반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른바 ‘윤석열 X파일’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양측 간에 비슷한 물밑 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의 이런 싸움 양상을 두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서로 믿지 못하는 이종(異種) 경쟁의 부정적 양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경선 시작 한 달을 앞두고 ‘1위 주자’ 타이틀을 단 채 입당한 윤 후보와 , ‘무야홍’을 외치며 추격에 나선 홍 후보의 초반 경쟁은 종전 보수 진영 대선판에선 볼 수 없었던 변종 레이스다. 20여 년 전 ‘6공(共) 황태자’를 구속해 스타덤에 오르며 정치권에 들어온 홍 후보와 ‘문재인의 페르소나’로 불린 조국 전 장관 일가를 재판정에 세우고 정치에 뛰어든 윤 후보는 모두 검사 출신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대를 이종 경쟁자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1차 토론장에서 서로 “보수 궤멸의 주역”이라며 으르렁댄 게 그 방증이다.

정치판에서 이종 경쟁은 ‘불신의 싸움’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상대를 신뢰하지 않으니 비전 경쟁보단 네거티브 캠페인에 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싱, 주짓수, 무에타이 출신들이 한 링에서 겨루는 이종격투기에도 룰이 있다. 쓰러진 상대를 가격하지 않는다는 복싱의 신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깨물기, 눈 찌르기 같은 반칙은 안 된다. 룰을 넘어서는 싸움은 격투기가 아니라 개싸움일 뿐이다. 윤 후보는 1차 토론 때 확인되지 않은 홍 후보 측의 제보 사주 개입 가능성을 의심한다는 홍 후보 공세에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한발 뺐다. 홍 후보는 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를 ‘도륙’이라고 공격했다가 ‘조국수홍’ 논란에 휘말리자 “생각을 바꾸겠다”고 물러섰다. 두 사람 모두 차선 이탈 경고음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사상가들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미덕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이종 간 조화’다. 플라톤 밑에서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아닌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은 벗이지만 진리는 더 소중한 벗”이라고 했다.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되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갖는 게 이종 간 조화다. 이종격투기로 치면 주 종목 기술을 쓰되 반칙 없이 맞붙는 것이다. 추석 후 열린 국민의힘 2차 토론 땐 반칙 플레이가 거의 사라졌지만 후보들은 수세에 몰리면 다시 반칙 실탄을 채운 총구를 상대에게 겨누려 할지 모른다. 반칙 없는 화끈한 타격전이 주는 이종격투기의 묘미를 국민의힘 경선 링에서 느낄 수 있을지는 후보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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