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윤석열·홍준표의 이종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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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잃지 않되 반칙 없는 정통 격투기 묘미 보여줘야
기업 출신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기업과 정치권의 차이를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이 의외였는데 그럴싸했다. 그는 “한눈팔면 뒤통수에 총알이 날아드는 건 같은데 기업에 있을 때와 달리 정치판에선 누가 총을 쐈는지 찾을 길이 없더라”고 했다. 자기를 겨눈 총탄이 난무하지만 총구(銃口)를 찾을 수 없어 막막한 정글 같은 곳이 정치판이란 뜻이다.
추석을 목전에 두고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1차 TV토론은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균 시청률 6%대를 기록했고 윤석열·홍준표 후보가 격돌할 때는 순간 시청률이 8%를 넘었다. 하지만 윤·홍 두 사람의 정공법을 앞세운 타격전을 기대했던 시청자 중에선 실망한 이도 적잖았다. 누가 대통령감인지를 겨루기보다 정치판의 음습한 ‘총구’ 찾기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제보를 모의한 자리에 홍 후보 측 인사가 동석한 것 아니냐고 윤 후보 측이 의심하고, 이에 홍 후보가 “허위 정치 공작”이라고 반발하면서 급기야 당대표가 양쪽에 ‘경고장’을 날렸다.
윤 후보 측이 자신들을 겨눈 공격의 총구를 찾아 나서고, 의심받는다고 느낀 홍 후보 측이 윤 후보 측을 향해 총구를 잘못 찾았다고 반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른바 ‘윤석열 X파일’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양측 간에 비슷한 물밑 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의 이런 싸움 양상을 두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서로 믿지 못하는 이종(異種) 경쟁의 부정적 양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경선 시작 한 달을 앞두고 ‘1위 주자’ 타이틀을 단 채 입당한 윤 후보와 , ‘무야홍’을 외치며 추격에 나선 홍 후보의 초반 경쟁은 종전 보수 진영 대선판에선 볼 수 없었던 변종 레이스다. 20여 년 전 ‘6공(共) 황태자’를 구속해 스타덤에 오르며 정치권에 들어온 홍 후보와 ‘문재인의 페르소나’로 불린 조국 전 장관 일가를 재판정에 세우고 정치에 뛰어든 윤 후보는 모두 검사 출신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대를 이종 경쟁자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1차 토론장에서 서로 “보수 궤멸의 주역”이라며 으르렁댄 게 그 방증이다.
정치판에서 이종 경쟁은 ‘불신의 싸움’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상대를 신뢰하지 않으니 비전 경쟁보단 네거티브 캠페인에 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싱, 주짓수, 무에타이 출신들이 한 링에서 겨루는 이종격투기에도 룰이 있다. 쓰러진 상대를 가격하지 않는다는 복싱의 신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깨물기, 눈 찌르기 같은 반칙은 안 된다. 룰을 넘어서는 싸움은 격투기가 아니라 개싸움일 뿐이다. 윤 후보는 1차 토론 때 확인되지 않은 홍 후보 측의 제보 사주 개입 가능성을 의심한다는 홍 후보 공세에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한발 뺐다. 홍 후보는 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를 ‘도륙’이라고 공격했다가 ‘조국수홍’ 논란에 휘말리자 “생각을 바꾸겠다”고 물러섰다. 두 사람 모두 차선 이탈 경고음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사상가들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미덕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이종 간 조화’다. 플라톤 밑에서 수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아닌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다. 그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은 벗이지만 진리는 더 소중한 벗”이라고 했다.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되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갖는 게 이종 간 조화다. 이종격투기로 치면 주 종목 기술을 쓰되 반칙 없이 맞붙는 것이다. 추석 후 열린 국민의힘 2차 토론 땐 반칙 플레이가 거의 사라졌지만 후보들은 수세에 몰리면 다시 반칙 실탄을 채운 총구를 상대에게 겨누려 할지 모른다. 반칙 없는 화끈한 타격전이 주는 이종격투기의 묘미를 국민의힘 경선 링에서 느낄 수 있을지는 후보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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