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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브리핑] 英 왕실 유언장 비공개가 전통?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1. 09.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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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공 유언장 90년 봉인 결정
지난 4월 별세한 필립공의 지난해 모습/AFP 연합뉴스

지난 4월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남긴 유언장이 적어도 90년 동안 공개되지 않는다고 BBC가 최근 보도했다. 영국 고등법원이 왕실의 요청을 받아들여 필립공 유언장을 이같이 장기간 봉인하도록 결정했다.

-필립공의 유언장 봉인은 어떤 절차를 거쳤나.

왕실에서 법원에 요청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 7월 앤드루 맥팔레인 수석판사가 비공개로 왕실의 유언장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일지 심리했다. 법원 심리에는 필립공의 유산 처분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참석해 비공개가 필요하다는 왕실의 입장을 전달했다. 맥팔레인 판사는 왕실 입장을 수용해 “유언장에 담긴 내용은 왕실의 사적인 영역으로서 일반 대중이 알아야 할 실익이 없으며, 왕실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고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맥팔레인 판사는 자신도 필립공의 유언장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언장 비공개는 영국 왕실의 오랜 전통인가.

1910년 국왕 조지 5세의 처남인 프랜시스 왕자가 폐렴을 얻어 40세로 숨졌을 때 시작됐다. 당시 왕실이 법원에 프랜시스 왕자의 유언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이후 왕실의 관행이 됐다. 평생 미혼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프랜시스 왕자는 한 유부녀의 내연남이었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에메랄드 보석을 자신의 정부(情婦)인 유부녀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자 그의 누나인 메리 왕비(엘리자베스 2세 현 여왕의 할머니이자 조지 5세의 부인)가 이런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 법원에 유언장 비공개를 요청했다. 메리 왕비는 에메랄드를 가져간 남동생의 정부에게 조용히 돈을 쥐여주고 되찾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의 유언장 비공개의 첫 사례가 된 주인공인 프랜시스 왕자. 1902년 프랜시스 왕자를 그린 그림이다./위키피디아

-봉인 기간은 왜 90년인가.

법원이 보관 중인 프랜시스 왕자의 유언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당시 법원은 무기한 봉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왕실 관계자들의 유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필립공 유언장과 관련해 영국 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맥팔레인 수석판사는 “군주의 헌법적 지위를 인정해 왕실의 유언과 관련해 특별한 관행을 갖는 것은 적절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대중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필립공의 유언에 대해 왕실은 봉인 기간이 125년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맥팔레인 수석판사는 90년만 인정했다. 90년 정도면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90년이 지나 2111년이 되면 기록물 전문가가 유언장이 제대로 보관됐는지 확인한 다음 법원이 구체적인 공개 절차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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