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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터질지 모를 빚폭탄 230조원

김신영 기자 입력 2021. 09. 25. 03:03 수정 2021. 09. 2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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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銀 금융안정상황 보고서
코로나 이후 부채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갚기 어려운 '위험한 대출'도 많이 불어났다. 한국은행은 금리가 0.5%포인트 오르면 이자가 6조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 /뉴시스

코로나 이후 가계와 기업 부채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큰 ‘위험한 대출’이 2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800조원대로 치솟은 가계 부채와 자산 가격 ‘거품’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했고, 코로나 피해 대책으로 시행 중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출 상환 유예가 내년 3월 종료될 예정이라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자영업자, 버는 돈보다 이자가 많은 부실 기업, 소득이 비교적 낮은 2030세대 청년층 등의 부채가 크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대내외 충격으로 취약한 대출자들의 위험이 현실화하면서 금융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 1년간 빠르게 불어나 2분기에는 850조원을 넘어섰다. 한 해 사이 103조원이 증가했다. 한은은 이 대출 중 9% 정도인 약 77조원을 사실상 갚지 못할 대출로 간주한다. 연간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다 못 갚는 ‘한계기업’의 비율은 201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15%에 달한다. 이런 기업이 빌린 돈은 124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조1000억원 증가했다.

그래픽=양인성

청년층 대출도 지난 1년간 급증했다. 2030세대가 진 빚은 약 490조원으로 전체 대출의 4분의 1을 넘어섰다. 전세 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이 크게 늘었다. 한은은 청년 대출자 중 약 7%는 상환 능력이 없다고 본다. 대출 금액대별로 고르게 퍼져 있다고 가정하면 33조원 정도가 갚지 못할 빚인 셈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를 통제한다고 하면서도 전세 대출 등의 증가는 사실상 용인하며 그동안 느슨하게 대응해 왔다. 최근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는 사상 최대 규모라는 양적인 측면도 문제지만, 자영업자와 2030세대 등에서 받아간 ‘위험한 대출’의 증가세가 가파른 것이 더 큰 문제로 꼽힌다. 코로나로 인한 매출 감소, 빚 없이는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는 주택 가격에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 환경이 겹친 결과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명목 기준)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5%로 주요국(평균 63%) 중 다섯째로 높다. 처분 가능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2%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려 대출 금리가 상승할 경우 빚 상환 부담이 커지며 소비 등 다른 경제활동으로 충격이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은은 “가계 부채 확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택 가격의 높은 상승이 이어지며 금융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대내외 충격으로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급변할 경우 금융 안정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금리가 0.5%포인트 올라가면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5조8000억원 불어날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자영업자 대출 2분기에 850조원 돌파

코로나 사태 이후 “빚으로 버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겹게 지내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대출은 지난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858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불어났다. 한 해 사이 103조원, 2분기에만 27조원이 늘었다. 업종별로는 사회적 거리 두기 피해가 컸던 도·소매업(14%), 여가서비스업(20%) 등의 대출 증가율이 높았다. 소득별로는 1~3분위 중·저소득 자영업자의 대출 증가율(16%대)이 다른 소득분위 증가율(12%대)을 웃돌았다.

자영업자 대출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2금융권에서 많이 늘었다. 2금융권 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고, 저축은행·신용카드사·대부업 등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 증가율이 18%로 특히 높았다. 자영업자 대출 중엔 빚 갚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대출자를 뜻하는 ‘취약차주’ 비율이 11%(대출자 수 기준)에 달한다. 한은은 금융회사에서 3건 이상 빚을 냈으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혹은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차주를 취약차주로 분류한다.

한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이미 인상한 가운데,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크게 불어날 전망이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올라갈 경우 자영업자 이자 부담은 2조9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2030 전세 등 주택 관련 대출 급증

20·30대 청년들의 대출은 전세자금 등 주택과 관련한 대출을 중심으로 특히 많이 늘었다. 집값이 오르고 전세 가격도 치솟으면서 ‘영끌(영혼까지 끌 정도로 최대치로 받은) 대출’로 살 집을 마련한 청년이 늘어난 영향이다.

코로나 이후 청년층 대출 증가율은 13%(2분기, 전년 동기 대비)로 다른 연령층(8%)보다 훨씬 높았다. 청년층이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7년 약 24%에서 지난 2분기 27%까지 올라갔다. 가계부채 증가분 중 청년층이 기여하는 비율은 2018~2019년 30%에서 42%로 확대됐다. 본지가 한은의 보고서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청년층 대출(할부금 등 신용판매 포함)은 지난해 초 414조원에서 지난 2분기 486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2030세대는 사회 초년병이 많아 소득이 낮은 편이어서 저소득 차주(대출자) 비중이 다른 연령층보다 컸다. 대출자 4명 중 1명(24%)은 저소득 차주였고, 취약차주 비율(6.8%)도 다른 연령층(6.1%)보다 높았다.

청년층의 빚은 전세자금대출을 중심으로 늘었다. 청년층 대출 중 약 25%가 전세대출로 다른 연령층(8%)보다 그 비율이 훨씬 컸다. 한은은 “전세대출은 상대적으로 규제 수준이 낮고 청년층 주거 지원을 위한 버팀목전세자금 등 지원 프로그램도 많아 20대와 30대의 증가율이 높았다”고 했다.

신용대출도 가파르게(2분기 20% 증가) 늘었는데 한은은 이 중 상당수가 주식 투자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정욱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청년층은 다른 계층보다 소득 수준이 낮고, 충격을 흡수할 금융 자산 축적도가 낮다. 미래에 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청년층이 일시적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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