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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운동권의 '이승만 포비아'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1. 09. 2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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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雩南) 이승만은 1913년부터 25년여간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첫 인연은 미국 유학길에 오른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29일 하와이에 내려 힘겹게 타국살이 하던 이민 1세 한인들과 만났다. 스물아홉 청년은 그 자리에서 교민 200여 명과 함께 예배를 보고 격려 연설도 했다. 이승만 평생의 업이었던 반일 독립운동의 씨가 그렇게 하와이에 뿌려졌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언론 출판을 통해 일제의 부당한 국권 침탈을 세계에 알렸다. 광화문을 본뜬 교회를 지어 국권 회복의 염원도 담았다. 해방 후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 청사진도 그곳에서 그렸다. 교육을 통해 남녀 차별 없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은 남녀공학인 한인기독학원으로 꽃피었다. 틈틈이 미국 본토에 마련한 구미위원부를 방문해 독립 외교전도 폈다.

▶이승만이 하와이 동포 성금을 모아 세운 한인기독교회 건물 마당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교민들이 1985년 세웠다. 동상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라 새겼다. 한인기독학원은 사라졌지만 ‘쿨라 콜레아’(한국 학교)라는 도로명으로 남았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눈을 감고 말년의 궁핍한 삶, 그러나 거대한 생애를 마감했다. 사망 직전까지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가끔씩 눈을 뜨면 “일인(日人)들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경계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후 하와이를 찾아 독립유공자 두 분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연설하며 하와이 독립운동의 처음이자 끝인 이승만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기이한 일을 단순한 옹졸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승만을 가장 싫어하고 저주한 사람들은 해방 전엔 일본인들이었고, 해방 후엔 소련과 북한이었다. 이승만만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고 지금 우리는 북한 치하에 있을 것이다. 북한 ‘조선민족해방투쟁사’는 이승만을 ‘매국노 민족반역자’로, 그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승만 분자들로 구성된 반인민적 정부’로 규정한다. 문 대통령이 다른 곳도 아닌 하와이에서 ‘이승만’ 이름 한 번 부르지 않은 심리의 뿌리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문 정권이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 독립 지사들 초상화를 내걸면서 임정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첫 대통령 이승만만 제외한 행태의 바탕엔 무엇이 있을까. 이들의 이승만 포비아(공포증)의 근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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