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朝鮮칼럼 The Column] 미·중 대결 격랑 속 한국의 나홀로 외교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대사 입력 2021. 09. 25. 03:20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국민이 국내 정치에 몰입한 사이에 동아시아에는 전략적 지각 변동의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1991년 냉전 체제 종식 이후 30년간 지속된 미국 일강 체제가 저물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냉전 2.0′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을 포위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 체제를 출범시킨 미국은 6월 G7 정상회담과 NATO 정상회담을 통해 범세계적 대중국 연합전선을 결성했다. 냉전시대의 COCOM(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을 연상시키는 대중국 첨단 과학 기술 통제 체제를 통해 중국 경제를 자유민주주의 세계로부터 격리하려는 디커플링(decoupling) 작업도 진행 중이다.

미국이 지난달 “대중국 전선에 군사력을 집중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수한 후, 동아시아의 현상 타파를 노리는 중국의 군사행동을 견제하는 반중 연합전선의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남중국해 공해 지역의 90%를 영해로 불법 편입하려는 중국의 영토적 야심에 대항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는 한국을 제외한 미국의 아태 지역 동맹국 전체가 동참하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의 항모전단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와 중국의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는 남중국해의 긴장은 대만해협으로 북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조짐을 보이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은 대만 무력 점령을 공언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재무장 기회를 노리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으로 참전하리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정의용(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9월 1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동아시아를 무대로 긴박하게 전개되는 미·중 패권 대결에서 중국은 세 가지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첫째, 가까운 장래에 미·중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 군사력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 미·중 무력 충돌 발생 시 아시아와 유럽의 미국 동맹국 다수가 참전할 전망이나, 중국의 맹방인 러시아·북한·이란·파키스탄 등 어느 나라도 중국과 함께 싸울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셋째, 미국의 경제 제재와 디커플링 정책에 따른 경제 침체로 인해 중국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미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추월할 가능성이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 더하여, 지난주 발표된 미·영·호주의 오커스(AUKUS) 안보협의체 결성은 중국에 큰 충격이 되었다. 지난해까지 호주는 한국을 능가하는 대중국 무역 의존도로 인해 다분히 친중적인 정책을 취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 사태와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 등에 관한 호주의 비우호적 태도를 문제 삼아 ‘길들이기’ 차원에서 고강도 제재를 가하자, 호주 정부는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의연한 정면 대응의 길을 택했다. 이러한 호주의 자세는 사드 제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저자세 대응과는 상반되는 선택이었다. 그 여파로 호주는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보았으나,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를 능가하는 미국의 최상위 동맹체 오커스의 일원으로 대규모 핵잠수함 전단을 보유하고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세계의 선진 문명국들이 대거 중국의 반대편에 운집하는 시기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국내 정치 어젠다에 사로잡혀 세상사와 동떨어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북핵에도, 미·중 대결에도, 남중국해에도 관심 없는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적국인 중국의 문전을 드나들며 국내 정치용 남북한 평화 쇼 연출에 몰두하고 있다. 사드 배치, 쿼드 가입, 남중국해, 홍콩, 화웨이 문제 등 수많은 미·중 쟁점 현안에 관해서도 변함없이 중국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

동맹 관계란 전쟁 발발 시 함께 싸우겠다는 국가 간 서약이다. 거기에 중립주의나 균형 외교가 설 땅은 없다. 주권국가는 언제든 원하면 동맹을 파기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맹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동맹국의 적국과 뒷거래하는 것은 동맹의 배신이다. 주권과 국격을 볼모로 하여 전개되는 한국 정부의 맹목적 친중 사대 외교는 국익에 유해하고 반역사적이며 국민 정서에도 역행한다.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중국 비호감도는 77%로 세계 4위에 달한다.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 그처럼 깨어 있을진대, 이젠 우리 정부도 중국에 대한 미몽과 집착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