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의 문화스케치] 산책하다 산 책

2021. 9. 2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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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참 좋은 계절이다. 아침에는 바람이 좋고 낮에는 볕이 좋다. 저녁의 기운과 밤의 냄새는 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상상만으로는 아쉬워서 오늘도 단출한 차림으로 밖에 나선다. 사람들이 취미에 대해 물을 때마다 언젠가부터 산책이라고 답해왔다. 예전에는 독서라고 대답했는데, 취미라고 부르기에는 읽는 일이 이미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읽고 쓰는 일을 20여년간 해오다 보니, 읽기는 밥 먹기나 잠자기처럼 일상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매일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어쩐지 면구스럽다. 침대 옆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잠들고 일어난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는 늘 책이 있다.

가을날에는 내딛는 걸음에도 힘이 붙는다. 온도와 습도가 적당해서 힘을 들이지 않고 걷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여유가 생기니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도 잦다. 실은 눈에 들어온다기보다 눈에 들어차는 것 같다. 그래서 가을에는 목을 길게 늘여 빼고 걷는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서, 그것을 더 가깝게 보고 싶어서. 산책하다 만나는 이름 모를 새에게 인사를 건네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나 솔방울을 줍기도 한다.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소박할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산책의 많은 부분이 소박함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문득 김연수의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문학동네, 2013)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글에 등장하는 Y씨는 이렇게 말한다. “텔레비전 토크쇼를 보다 보면 1시간 반쯤은 금방 지나가버리잖아요. 산책으로 친구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예전에는 능률이 오르지 않던 집안일도 짧은 시간에 척척 해치우게 된답니다.” 나도 극중 화자처럼 ‘짧은 시간에 척척’이라는 구절을 노트에 적었다. 그것은 어떤 바람과도 같았다. 읽고 쓰는 데 있어 저런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짧은 시간에 척척. 그러나 애석하게도 몸과 마음은 따로 놀고 머리는 자꾸 딴생각을 하려고 한다.

심신이 향하는 데가 서로 달라서 나는 산책을 한다. 머리가 딴생각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나는 산책을 한다. 취미도 반복하다 보면 특기가 된다고 하는데, 산책하는 기술이 향상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다리로 걷고 눈으로 담고 귀로 듣는다. 틈날 때마다 산책하는 취미 때문에 깨달음도 얻었다. 계절과 시간대를 ‘제약’이 아닌 ‘최적’으로 받아들일 때, 만족감이 가장 크다는 점이다. 가을날 산책을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지만, 봄날은 봄날대로 여름날은 여름날대로 매력이 있다. 가만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에 나는 여름다움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감각한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날에도 걷다 보면 몸 안에서 필사적으로 피가 돌고 있음을 깨닫는다. 더위와 추위는 더 이상 장벽이 아니라 ‘함께하는’ 기운이 된다. 몸은 고될지라도 마음은 늘 넉넉해진 채 돌아온다.

산책을 하다 책을 사는 일도 늘었다. 빈손으로 외출했다가 양손 가득 책을 사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천으로 된 가방을 하나 들고 산책한다. ‘산책하다 산 책’이라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혼자 몰래 웃기도 했다. 얼마 전에 산책길에서 구입한 이장욱의 장편 ‘캐럴’(문학과지성사, 2021)에는 때마침 산책에 대한 문장이 등장한다. “잠을 자는 대신 새벽에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거나 산책을 나간다고 당신에게 말해두었다. 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뿐이다.” 글쓰기와 독서와 산책, 다름 아닌 내 일상을 구성하는 세 꼭짓점이다. 할 때마다 새롭고, 도무지 실력 향상이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행위다. 동시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적극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어쩌면 읽고 쓰고 걷는 일은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하는 일일지 모른다. 읽음에는 끝이 없고 아무리 써도 마지막 문장에 완벽하게 착지하지는 못한다. 오래 걷는다고 해서 더 잘 걷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무용한 일과 무가치한 일이 다르듯, 읽고 쓰고 걸으면서 나를 둘러싼 시공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몸에 새길 수는 있다. ‘짧은 시간에 척척’은 불가능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는 있기 때문이다.

힐끗 쳐다보니 침대 옆 책탑의 상당수는 산책하다 산 책들이다. 그 모습이 꼭 읽기, 쓰기, 걷기가 만들어낸 트라이앵글 같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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