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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넘치는데 일할 사람 없는 美..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글로벌 현장]

입력 2021. 09.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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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인력난 해소 위해 높은 임금 제시..소비자 원가로 전이될 가능성 커
[글로벌 현장] 

9월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LA공항 채용박람회에 참석자들이 모이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이 최근 공개한 베이지북 내용 중 일부다. 베이지북은 미국 전역의 경기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다. 1년에 8차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2주일 앞두고 통화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작성된다.

이번 베이지북에선 미국의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 와중에 경기마저 둔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통화·경제 당국과 백악관의 고민이 커지게 됐다.

 

“사람 찾습니다” 공고 1000만 건 또 넘어

미 정책 당국이 올 들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고용이다. 일자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넘치는 게 문제다. 일자리는 많은 데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생산 시설은 물론 서비스 수요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인력 부족은 그렇지 않아도 많이 뛴 물가를 더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노동부가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고용 시장의 미스 매치(수급 불일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기업들이 공고를 내고도 채용하지 못한 노동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채용 공고는 총 1093만 건으로 집계됐다. 전달인 6월에 사상 처음 1000만 건을 돌파(1019만 건)했는데, 이 추세가 가팔라졌다는 얘기다. 전체 노동 인력 대비 채용 공고율은 6.9%를 기록했다. 전달(6.5%)보다 0.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호텔업 등 여행 관련 업종의 구인 건수가 182만 건을 기록했다. 의료·복지 업종이 179만 건으로 뒤를 이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따른 인력 부족 현상이란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통계다. 임금을 올려줘도 보육 시설 부족, 감염 우려 등으로 선뜻 구직에 나서는 사람이 적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채용 공고가 2개월 연속 1000만 건을 넘었는데도 채용 건수는 667만 건에 그쳤다. 인력 수급 불일치 규모가 426만 건에 달했다. 미국의 고용 지표가 부진해진 것은 노동 수요 하락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이 문제였다는 의미다.

실제로 8월의 미국 내 비농업 신규 일자리 수는 전달 대비 23만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시장 전망(72만~73만 명 증가)을 크게 밑도는 것은 물론 전달의 일자리 증가 수(105만3000명)와 비교하면 4분의 1 토막이 났다.

뉴저지 주 노스베일의 한 타이어 업체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원래 7~8명의 타이어 기술자가 필요한데 지금은 5명만 일하고 있다”며 “팬데믹 이후엔 궂은일을 배우면서 일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 전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스쿨버스 운전사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전했다. 연방정부에서 총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긴급 자금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공립학교는 운전사 400여 명을 확보하지 못해 이달 초로 예정됐던 개학을 2주일간 연기했다.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있는 이스트사이드 차터스쿨은 자녀를 직접 등·하원시키는 부모에게 700달러씩 지급한다는 고육지책을 꺼내들었다.

스쿨버스 운전사 중 상당수가 보수가 나은 배송 업체 등으로 옮긴 데다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때문에 버스당 탑승 인원이 줄면서 운전사의 수요가 늘어난 점도 주요 배경이다.

갑자기 서비스 인력이 많이 필요해진 식당·숙박업계는 상시 채용 중이다. 지난 7월 식당·숙박 업체가 채용 공고를 낸 인력은 총 158만4000명에 달했다. 올 2월(80만8000명) 대비 두 배 늘어났다.

사람의 빈자리를 로봇으로 채우는 곳이 확산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로봇을 사서라도 소비자의 주문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화이트 캐슬은 감자튀김을 만드는 ‘플리피’란 이름의 로봇을 최근 시범 도입했다. 청소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이 체인점은 플리피를 대량 사들일 계획이다. 회사 측은 “로봇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실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플리피를 개발한 미소로보틱스는 현재 지능형 음료 배포 로봇을 만들고 있다. 소비자가 음료수를 주문하면 적당한 컵을 찾아 음료를 따른 뒤 밀봉까지 마치는 식이다. 

로봇 관련 스타트업인 초보틱스는 샐러드를 제조하는 로봇을 최근 선보였다. 주문 후 샐러드를 완성하는 시간은 단 90초에 불과하다. 무인 점포에서도 샐러드 판매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켈리 로디 초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들이 로봇을 조작하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주문을 완료할 수 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더 적합하다”고 소개했다.



 

물가상승·경기둔화·테이퍼링 3중고 겪을 수도


미국 내 상당수 기업들은 일시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임금을 제시하고 있다. 채용 계약 직후 1000~2000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하거나 일정 기간 재직하면 대학 등록금 등을 지원하겠다는 조건도 적지 않다. 최종 소비자가 지불하는 상품·서비스의 원가로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인력 부족 현상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더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인력 컨설팅 업체인 블랙박스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내 식당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1년 전보다 10% 정도 인상됐다. 전체 노동자 임금은 최근 5개월 새 2.8% 뛰었다. 1981년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일각에선 델타 변이 확산 등으로 경기가 둔화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란 점에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 급등 속에 성장마저 둔화하는 현상이다. 1970~1980년대의 ‘오일 쇼크기’ 이후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은 없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분석가 중 한 명인 다이앤 스웡크 그랜트손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3분기에는 소비자 지출이 다시 줄어들 것”이라며 “미 성장률이 이미 2분기에 최고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Fed는 연내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착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매달 1200억 달러씩 시장에 공급해 온 유동성을 줄여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물론 전형적인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인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도 “연내 채권 매입 속도를 줄이는 게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머지않아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유동성 축소까지 감당해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일자리와 실업자를 지금보다 더 잘 연결하고 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한다면 내년 고용 시장은 상당히 호전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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