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통해 세상 읽기] 선사부모(善事父母)

김상용 기자 2021. 9.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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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명절 제사 당연시하던 시대 지나
먼 친척은 되레 이방인처럼 느껴져
조상에 올리는 제사 孝 전부는 아냐
다음 세대에 물려줄 새 풍속 나올때
[서울경제]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지난 1970년대에 손윗사람을 처음 만나면 당사자의 이력보다 부모님과 고향부터 물었다. 사람의 신원에서 자신의 능력과 경력만큼 부모님과 고향이 정보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면 부모나 고향과 관련한 사항을 잘 묻지도 않고 프라이버시로 간주하니 묻기에도 부담스럽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고향의 기준도 달라졌다. 과거에 고향을 조적(祖籍)이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의 뿌리를 조부모 및 그 이전부터 생활하던 터전과 연결시키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 요즘 고향을 물으면 누구도 조부모의 생활 터전과 결부시키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곳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이는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적 정체성을 과거의 조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반영한다.

고향에 관한 사고의 변화는 추석을 비롯해 명절에 만나는 먼 친척 또는 일가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로 나타난다. 과거에 먼 친척은 명절에 만나서 공동의 뿌리를 확인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근래에는 아파트의 가옥 구조로 인해 많은 친척이 한곳에 모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영향으로 먼 친척은 만나기에 편하지 않은 이방인처럼 여겨진다. 만난다고 해도 평소 사용하지 않은 촌수와 호칭은 말을 건네기 어색하기도 하고 항렬은 사람 관계를 꽤 어렵게 만든다.

이같이 가족은 과거처럼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제도의 자리에 있지 않다. 간혹 특정인의 상속과 입시의 성공, 그리고 난마처럼 얽힌 비리가 사회의 현안이 될 때 가족 ‘관계’가 부각되고는 하지만 가족 ‘제도’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다. 그만큼 현대인은 더 이상 머나먼 조상에게서 자신의 공간적·혈연적 정체성을 찾지 않고 필요할 때 사람 관계를 맺고 끊는 낱낱으로서 사람, 즉 개인(個人)의 특성을 보여준다.

올해 추석 명절에서 가족이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했을 때 코로나19 혹은 대선만큼이나 효도로서 제사가 화제가 됐을 것이다. 칠팔십 세대는 “내가 살아 있을 때까지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사오육십대는 “내 대까지 제사를 지내겠지만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수는 없을 듯하다”는 다짐을 하고 이삼십대는 “언제까지 이렇게 제사를 지내야 할까”라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효도로서 제사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효도로서 제사는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다(효·孝, 선사부모·善事父母)”라고 풀이하면서 이후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때 효(孝) 글자는 나이 많은 어르신을 나타내는 노(?)와 세대를 이어가는 자식을 나타내는 자(子)의 결합으로 돼 있다. 처음에 효의 기원을 젊은 자식이 나이 많은 어른을 돕는다는 부축설으로 봤다. 이는 어르신을 병약한 사람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당시 지혜가 많은 사람으로 여기는 관습과 호응이 될 수 없다. 효의 기원은 앞선 세대의 물질적·정신적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계승설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렇게 보면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만큼 과거 세대에 고마움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를 잘 모신다는 효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제사는 선사부모로서 효도가 부모 사후에 이어지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고마움의 표현으로써 제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았지만 스스로 앞길을 개척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과거처럼 풍성하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제사가 더 이상 지속되기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선사부모(善事父母)로서 효의 의미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그 형식의 일종인 제사는 변화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다양한 제사가 논의되면서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새로운 형식이 출현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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